#8 과도
흔히들 혼자 살면서 아픈 것만큼 외롭고 서러운 때도 없다고 한다. 끙끙 앓을 만큼 아파본 게 코로나가 마지막이었으니 딱히 실감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딱 한 번 느껴본 적이 있다.
야식 준비를 하며 양파나 마늘 같은 걸 썰고 있을 때였다. 한순간 오른손이 박자를 놓치며 왼손 중지를 베었다. 상황을 인지하기까지 몇 초가 걸렸고 손가락에서 피가 후두두 떨어지는 감각에 정신이 들었다. 언뜻 보아도 상처가 꽤 깊었는데, 까지고 긁혀 얕은 피를 본 경험은 많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하얬다. 집에 소독약이나 연고가 없었던 터라 응급처치 방법이라도 찾아보려 휴대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움직이는 순간 피가 죽 빠지는 듯한 느낌이 심장에서부터 손끝으로 전해졌고, 순간 빈혈이 와 그대로 주저앉았다.
싱크대를 부여잡은 채로 엉거주춤하게 앉아 기시감과 빈혈이 없어지기를 기다렸다. 기립성 저혈압으로 쌓인 신체 데이터가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하부 장과 바닥에 묻은 피를 애써 외면하며 심호흡만 하고 있었다. 5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야식 먹겠다고 이 사달을 내고 와중에 바닥을 더 이상 더럽히지 않겠다는 생각에 손을 싱크대 안으로 뻗어 만세 자세를 하며 숨을 고르고 있는 내 모습에 웃음이 났다. 손과 주방을 수습하고 가족 단톡방에 달밤의 쇼를 공유하며 30분 만에 가벼운 해프닝으로 마무리했다.
칼을 잡고 있는 동안에는, 심지어는 설거지를 할 때조차도, 날에 베이면 어떡하지? 라는 작은 상상이 피어오른다. 그래서 큰 식칼은 꼭 써야 할 때만 꺼내고, 일상적으로는 과도로 재료를 손질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큰 칼만큼 무섭지 않으니 조심성이 덜한 상태에다가, 작은 칼날 크기를 보완하려 힘을 더 주다 보니 큰 상처로 이어졌던 걸로 추측된다.
2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날의 실수는 흉터로 남아 있다. 이후로 칼을 더 무서워하면서도 우리 집 식칼이 칼집에서 나오는 날은 손에 꼽는다. 애착 과도가 되어버린 것인지 자연스레 손이 간다. 딸의 손을 베어버린 과도를 본 엄마는 너무 날카롭다며 그거 한 번 다친 게 다행이라며 버리려 했지만, 새로 사기가 귀찮았던 나는 더 조심하기로 약속하며 지켜냈다. 오랜만에 사과를 깎으며 본래 제 역할을 완수한 과도는 오늘도 식기 건조대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