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수사관 Ep. 3 - 미스터리 범죄 초자연 수사 스릴러 소설
몸이 회복된 나는 다시 그 현장으로 향했다.
어두운 시골길을 달리며 두려움에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굳게 다잡았다.
‘여기서 포기하면 안 돼! 할 수 있어! 감공필!’
현장과 가능한 가까운 곳에 차를 주차를 하고 내렸다.
그새 새벽 공기가 차가워졌다.
라이브 방송을 켰다.
평소에는 출발 전 차에 올랐을 때 방송을 시작했었다. 후원금을 모으기 위함도 있지만 구독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기도 했고, 그날의 방송 콘텐츠에 대해 브리핑하는 그런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은 그럴 수 없었다.
“저… 감공필 오늘도… 미스터리 현장을… 찾아왔습니다.”
여전히 두려움에 목소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시청자들은 나의 상태를 바로 눈치챘다.
‘형, 몸이 안 좋으면 오늘 휴방 하세요’, ‘힘내세요’ 같은 응원의 메시지도 있었지만, ‘쫄았냐?’, ‘돈 벌려고 불철주야 쌩지랄한다’ 같은 메시지들도 채팅창을 채웠다.
이런 이유로 현장에 오는 동안 마음을 다잡고 방송을 켜려 했던 것이었다.
난 아무런 말없이 EMF측정기와 발걸음 추적기의 전원을 켜서 현장에 내려놓았다.
EMF측정기의 좌우 표시등이 모두 켜졌고 수치도 100을 나타냈다.
조금 뒤로 물러 섰다.
그리고 스피릿 박스를 백팩에서 꺼내 손에 들고 전원을 올렸다.
‘츠 츠츠츠 츠’
“나한테 왜 그랬어요?” 아름다운 인생의 이병헌 성대모사로 말문을 열었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나만의 방식 중 하나가 개그를 하는 것이었다.
공포를 유머로 승화시켜 상쇄하는 방법이었다.
“정말 죽이려고 그랬어요?”
‘츠 츠츠 츠 츠’
스피릿 박스에선 백색 소음만이 흘러나왔다.
“아직도 여기 있는 거 알아요.”
‘츠 츠 츠 츠’
“도와주려고 했는데… 왜…”
‘삐익 츠 츠츠 츠 삐’
‘츠츠 내가 츠츠 아 츠 삐 그 삐익 츠 래 츠 츠츠’
“뭐라는 건지 못 알아듣겠는데… 들은 사람 있어?”
채팅창엔 각가지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똑바로 다시 말해 봐요.” 이병헌 성대모사가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아 계속 이어갔다.
‘내가 츠츠 아 츠 니 츠츠 츠츠 츠삐익 야 츠츠츠’
소음이 섞여 있었지만 중간중간 또렷하게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신이 안 그랬으면 누가 그랬어요?”
‘츠 치츠 츠 츠’
채팅창의 반응이 느려져가고 있을 때 즈음이었다.
‘뿌악 뿌 빠빠 푸푸’
괴상한 소음이 스피릿 박스에서 터져 나왔다.
“뭐야!” 짜증 섞인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나다’ 선명하게 들리는 허스키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황한 나는 카메라 옆에 세워 둔 보조 조명을 넘어뜨렸다.
채팅창은 다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넌 뭐야?” 소리쳤다.
‘쁘빠 츠츠 뿌 츠 신 츠츠’
쓰러진 조명을 다시 세우느라 잘 듣지 못했다.
“뭐라고?”
‘신’
신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어두운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신발? 무슨 신발?”
‘나는 신’
다시 들려온 허스키한 남자의 목소리에 소름이 끼쳤다.
“아… 그때 잃어버린 신발이냐? 어딨냐?” 너무 무서워서 같잖은 개그를 쳤다.
‘츠 치츠 츠 츠’
백색 소음만 들렸다.
“어디에 있냐 내 신~발!” 크게 소리쳤다.
‘츠 츠츠 츠 도와 츠 츠츠’
다시 들리는 여성의 목소리 도움을 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방금 그 남자 누구야?”
‘츠츠 츠 삐익 츠 몰 츠츠 츠츠 츠’
“몰…? 몰라요?”
‘쁘삐뿌악 쁘 악마 뿌우’
다시 허스키한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채팅창에 후원금이 터지는 메시지가 쉴 새 없이 울렸다.
“악마? 내가? 난 아니니까..., 그럼 니가? 증명해 봐 니가 악마라는 걸.”
아무런 현상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진짜 무슨 일이든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혼재한 상태로 가방에서 파즘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이제부터 내가 사진을 찍을 거야. 아쿠마야. 그러니까 뭐든 해봐!”
난 카메라의 샤터를 눌렀다. 그리고 동영상 모드로 변경을 해서 삼각대에 거치시켰다.
“파즘 카메라 사진 한방 찍었고 지금 관찰카메라로 촬영 중! 방송 끝에 확인해 보자고!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하하하”
‘츠 츠 츠츠 츠’
스피릿 박스에선 라디오 잡음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해봐!”
나도 시청자들도 모두 숨죽여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10여분이 지나는 동안 아무런 현상도 일어나지 않자 채팅창에선 여러 가지 가설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라이브 방송의 집중도를 유지하기 위해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려야 했다.
“내가 기브스하고 누워서 생각을 해 봤거든, 그 피해자 영혼은 현장에 묶인 것 같아 이유는 모르겠어. 그래서 지금부터 물어볼게.”
4방향 열추적기를 카메라 렌즈 아래 거치대에 올려 두었다.
“현장에 묶여서 나올 수 없는 거죠?”
‘츠 츠 츠 츠’ 소음만이 스피릿 박스에서 흘러나올 뿐이었다.
“내가 보여요?”
‘쁘 뿌 안보 쁘뿌우 저여 쁘브 자 뿌우’
허스키한 목소리가 대답을 했다.
“들었어! 피해자 영혼이 앞이 안 보이는 것 같아! 왜지?”
나는 파즘 카메라를 다시 사진 모드로 변경을 하고 모든 조명을 끈 채 어둠을 향해 연사 했다.
그러자 발걸음 추적기에서 붉은빛이 요동을 쳤다. 내 쪽으로 무언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러지 마~, 무서워~, 그러다 나~ 죽어~.”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을 했지만 밀려오는 공포는 어찌할 수 없었다.
“헉!”
그때 느낀 얇디얇은 차가운 쉬폰천의 부드러운 바람 같은 감촉이 내 손등과 뺨을 타고 지나갔다.
하지만 나만 느낀 현상은 시청자들에게 전달할 수 없었다. 시청자들은 느낄 수 없는 것이기에 설명을 해봤자 거짓말이라고 오명을 쓸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럼 여태껏 어렵게 쌓아온 리얼리티 방송의 신뢰가 무너지고 구독자들은 떠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 공포는 온전히 나만의 몫이 되어야만 했다.
“누구야?”
나는 궁금했다. 허스키한 목소리의 정체가…
“누구냐고! 누가 움직인 거야?”
‘츠 츠츠 츠 쁘 츠 삐익 뿌악 츠츠츠’ 여러 가지 잡음만이 스피릿 박스에서 흘려 나올 뿐이었다.
“네가 움직인 거지! 신발!”
‘쁘 츠츠 뿌아 츠츠 내가 엄지 쁘츠뿌삐 익 츠츠 뿌악’
여성의 목소리와 남성의 목소리가 뒤섞여 스피릿 박스에서 나왔다.
“피해자 영가님과 신발 둘 다 움직인 거야?”
‘쁘츠츠 뿌빠 쁘악 어 뿌 치츠 삑 몰삐익 라 츠츠’
남자의 목소리는 ‘어’ 여자의 목소리는 ‘몰라’로 들렸다.
“들었지? 신발이 어라고 했고 피해자 영혼이 몰라라고 한 거.”
채팅창에선 논쟁이 시작되었다. 우연의 일치라는 파와 두 개의 영혼이 있다는 파로 나뉘었다.
“신발, 넌 내가 보이냐?”
‘츠 치츠 츠츠 삐익 누구 츠츠 츠’ 여자 영가의 목소리만이 흘러나왔다.
“신발 숨지 말고 말해!”
‘츠 츠츠 뿌 뿌우 쁘으 그래 뿌악 쁘 츠츠’ 허스키한 남자 영가의 목소리가 잡음 중간에 들렸다.
“그래라고? 그럼, 여자 영가는 못 보는 거야?”
‘츠 츠츠 츠 삐 츠 내가 츠츠 삐익 못 봐 츠 츠’
여자 영혼의 목소리는 마치 자신이 볼 수 없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츠츠 뿌우 그래 뿌악 쁘 츠츠’ 허스키 영가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다시 들렸다.
채팅창에서 레전드 후원의 메시지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이럴 땐 언제나 일일이 후원자 닉네임을 말하며 감사의 멘트와 함께 가볍게 춤을 추었지만 지금은 그럴 겨를이 없었다.
“피해자 영혼님 당신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돌 뿐이고요.”
‘츠츠 츠 츠’
내 생각이 맞다면 피해자 영가는 무언가로 인해 사건 현장에 묶였고 보이지 않게 된 상태 같았다.
“신발! 듣고 있나! 넌 뭐야? 쉰 소리 하지 말고!”
‘츠츠츠 삐익 내 츠츠 왜 츠츠 삐~ 안 보이는 거지? 삐 츠츠츠’
너무나도 또렷한 문장이 여자의 음성으로 스피릿 박스에서 나왔다.
진짜 레전드를 찍고 있었다.
등 뒤로 식은땀이 척추의 골격을 따라 연신 흘러내렸다.
“신발! 피해자 여자 영가가 안 보이는 이유가 뭐야?”
‘츠츠 뿌뿌부뿌부 나도 쁘쁘쁘 피해자 뿌뿌빠브 츠츠’
“신발! 너도 피해자라고?”
무슨 상황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여러분~, 후원 너무 고마워! 일일이 말 못 해서 미안하고 근데,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해한 엉아 있남?”
채팅창에선 우연의 일치가 기계의 오류로 인한 것으로 변했고 영혼이 있다는 파들과의 설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사이로 빠르게 지나 쳐간 메시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을 다시 내려 보았다.
‘둘 다 모두 한 사건의 피해자 일지도 몰라요.’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자라는 닉네임의 시청자의 글이었다.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자 님, 둘 모두 같은 사건의 피해자라고요?”
‘네 그런 것 같아요’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자의 메시지가 채팅창에 떴다.
“혹시 보이시나요? 저 영가들이?”
‘여기니까 말을 하겠습니다. 전 영안을 가진 사람입니다.’
채팅창이 잠잠해졌다.
“영안이라면 귀신을 보는 눈을 말하시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믿을 실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모니터나 텔레비전으론 볼 수 없습니다.’
채팅창엔 ‘무당인가’와 ‘뻥가이버 등장’ 등의 메시지가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전 믿습니다. 영안을 가진 분들이 계시는걸요.”
‘네 고맙습니다. 이곳이니 맘 편하게 말해 보네요.’
“혹시, 괜찮으시면 저랑 방송 같이 하실 수 있으신가요? 얼굴 노출은 안 하셔도 됩니다.”
‘글쎄요.’
“신분 노출되지 않게 철저히 보안 유지해 드리겠습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언제부터 인지 채팅창엔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자의 글만이 써지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한 번이라도 꼭 함께 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 미제사건 해결을 위해서요. 제가 방금 보내드린 카톡으로 연락처 부탁드립니다.”
난 카메라를 향해 90도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채팅창엔 후원 메시지가 다시 터지며 저분 출연하면 대박 레전드라는 글들이 쇄도했고 기대한다는 글들로 도배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 방송을 마칠 시간이 되었다.
장비들을 챙겨 가방에 넣고 차로 돌아갔다.
“자, 오늘도 퇴각 시간! 끝으로 사진 보고 가자고!”
파즘 카메라의 찍힌 사진들을 방송에 연결하여 하나하나 열어 보았다.
뿌연 연기 같은 것이 찍힌 사진 하나가 있었고 흐릿한 형체 같은 것이 찍힌 사진이 두 어장 보였다.
“뭔가 찍힌 것 같긴 한데…, 집에 가서 자세히 검토하고 내일 방송에서 보고하겠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고생 많았습니다. 그럼 필~승!”
방송을 종료하고 집으로 향했다.
6년의 시간 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알 수 없는 뜨거운 무언 가가 느껴졌다.
그리고 서른셋 내 인생에도 멋진 일들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