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나를 찾지 않게 된 어느 날

Chapter 5

by SJ

돌아와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으며 침대에 걸터앉아 창밖 너머 들려오는 빗소리에 집중한다. 딱히 뭐 할 것도 없어서다.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간혹 들리는 웃음소리, 자동차 바퀴에 흩어지는 빗물 소리까지도 또렷하게 들리는 순간이다.


어느새 사랑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에 울컥 눈물이 차오른다. 아련한 사랑의 기억들이 빗소리를 타고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후회로 가득한 놓쳐버린 젊은 날의 사랑과 어리석음으로 잃어버린 시공간이 머릿속에 가득 메워진다. 그리고 심장이 목구멍에서 다시 터질 듯 펄떡이기 시작한다. 호흡이 멈추고 이내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된다. 이젠 호흡을 해야 한다는 생각마저 포기한다.


몸뚱어리를 흔드는 심장 소리와 함께 문의 손잡이 같은 환영이 희미하게 보인다. 옅은 삐- 하는 소리가 왼쪽 귀에 들려온다. 열고 싶지 않지만 열어야만 한다고 누군가 계속해서 내 오른쪽 귀에 속삭인다. 그건 목소리가 아니다. 마치 파동의 신호 같은 것이다. 차가운 손잡이를 당겨 문을 연다. 낯익은 장소다. 언젠가 와봤던 장소다. 데자뷔 같은 것인가 생각하며 걸어 들어간다. 익숙한 복도가 길게 늘어서 있다. 아무도 없는 복도를 조심스레 걸어간다. 복도 옆으로 강의실들이 보인다. 강의실 문에 나 있는 작은 창문 안을 들여다본다. 아는 얼굴들도 있고 모르는 얼굴들도 있다. 다들 강의에 몰입해 있는 것 같다. 고개를 돌려 강단을 보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수업이 끝난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자리를 피해 복도 끝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희미한 조명에 더러운 화장실이 무섭게 느껴진다. 두려움에 화장실을 나가려 하지만 등을 돌려 문을 열 자신이 없다. 등을 돌리면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기 때문이다. 왁자지껄한 소음과 함께 화장실 문이 열린다. 이때다 싶어 화장실에서 뛰쳐나온다. 복도에서 마주친 동기 친구인 상우가 수업 안 들어가고 뭐 하냐며 내 팔을 잡아끈다. 상우에게 이끌려 강의실에 들어와 앉는다. 웅성거리는 소음들과 휙휙 움직이는 사람들로 어지럽다. 책상에 잠시 엎드려 어지러움을 해소해 보려 한다. 교수님이 들어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든다. 그러자, 강의실에는 아무도 없고 나 홀로 중앙에 앉아 있다. 온통 새하얀 천장과 바닥 그리고 창문 없는 벽면에 무수히 많은 눈동자가 일제히 눈을 떠 나를 쳐다본다. 너무 놀라 강의실을 뛰쳐나간다. 맞은편 문에서 누군가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익숙한 향의 향내가 풍긴다. 이곳이 어릴 적 내방임을 직감한다. 그리고, 그 방의 문이 열리고 어린 내가 방 안으로 울먹이며 들어온다. 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커튼 뒤로 숨긴다. 그 바람에 창가에 서 있던 커다란 삼지창이 쓰러질 뻔했다. 어린 내가 문에 기대어 바닥에 앉아 울고 있다. 이곳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 사이 어린 내가 커튼을 휙 하고 열어젖힌다. 이제 들킨 건가 하는 생각과 함께 두 눈을 감은 채 가쁜 호흡을 들이쉰다.


힘겹게 눈을 떴을 땐 어두운 거실 바닥에 쓰러진 채 있다. 도대체 이 경험은 무엇인지 의아할 뿐이다. 그저 악몽이었는지 아니면 실제였는지 구분을 할 수가 없다. 그냥 나쁜 꿈이었길 바라는 마음이다. 잠시 후 깨질듯한 두통으로 차가운 거실 바닥을 뒹군다. 몸을 일으켜보려 하지만, 심한 두통에 고개를 들 수 없다. 머리를 감싸 쥐고 바닥에 웅크린 채 깊은 호흡을 해 본다. 구토가 밀려온다. 화장실로 갈 수 없는 난 그대로 거실 바닥에 토사물들을 쏟아내고 만다. 역한 냄새의 연초록빛 액체만이 쏟아져 나올 뿐이다. 두개골 속에서 뇌가 더 이상 자랄 수 없을 만큼 자라난 느낌이다. 몸을 가눌 수 없어 그대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그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다. 눈을 감은 건지 눈을 뜬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어둠 속에 그냥 누워있다. 이대로 미쳐버리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선다. 그 순간 문득, 누군가가 나를 찾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손을 더듬어 스마트폰을 찾는다. 한참을 더듬어도 이 빌어먹을 스마트폰은 찾을 수 없다.


나도 이렇게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 건 아닌가 겁이 난다.


아무도_삽화-2-0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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