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나를 찾지 않게 된 어느 날

Chapter 7

by SJ

뜨거운 캔커피 하나를 꺼내 들어 양손 사이에서 빙빙 돌리며 계산대로 향하는데, "야! 쫑식아!" 하며 누군가 내 등을 친다. 나한테 술 얻어 마시던 그 친구들 중 하나인 준호이다.


"어…, 준호야, 반갑다!"

"잘 지내지? 그 회사 여전히 잘 다니고?"

"어? 어…, 뭐…."

"자슥 많이 바쁜가 봐, 요즘 통 연락도 없고, 승진은 했지?"

"어…, 미안, 넌 어때?"

"나 임원으로 이직했잖아. 하하하."

"축하해. 어디?"

"응, IT 회산데, 너도 알 거야 요즘 애들 많이 사용하는 SNS 앱 만든 회사야."

"어…, 그래! 축하한다. 잘됐다."

"오랜만에 이렇게 만났는데 한잔하자! 내가 쏠게! 하하."


녀석은 방금 회사 직원들과 헤어지고 술도 깰 겸 캔커피 하나 마시려 편의점에 들른 거란다. 어디론가 나를 이끌고 가는 녀석의 발걸음에 힘이 실려 걸을 때마다 촥 촥 거리의 빗물에서 소리가 난다. 마치 승전고를 울리며 행군하는 군인 같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나도 용기 내 따라 걸어본다. 화려한 불빛들을 등에 지고 한참을 어디론가 걷는 친구 녀석을 따르며 뜨거운 캔커피를 홀짝인다. 캔커피의 달콤 쌉싸름한 맛에 왠지 기분이 좋다. 그렇게 녀석이 나를 한참을 이끌고 도착한 곳은 어느 가로등 밑 허름한 포장마차다.


"앉아, 여기 이래 봬도 맛집이야. 미슐랭 보다 여기가 나아." 얼굴을 찡긋거리며 너스레를 떤다.

뭐 어떠리, 친구와 오랜만에 소주 한잔하며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온 듯한데.

"이모, 여기 소주 하나랑 꼼장어 하나 주세요. 대자 같은 소자로."

친구 놈의 목소리에 흥이 느껴진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오랜만에 들이켠 소주 한 잔이 목구멍을 타고 온몸으로 화악 퍼진다.


"크~, 좋타! 하하!" 원샷을 한 준호가 호탕하게 웃는다.

"하하하, 그래 크~, 참 좋다!" 나도 따라 호기롭게 웃어 본다.

"너 살이 좀 빠졌다. 운동하냐?"

"운동은 무슨…. 그냥 좀 힘드네…."

"왜? 회사라도 잘렸냐?! 하하하."

친구 놈의 농담에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다.

"어…, 하하, 그만뒀어, 하하."

"뭐! 진짜? 왜?"

"그냥 좀 몸도 안 좋고 해서…. 겸사겸사."

"그래…. 그랬구나. 어디 봐 둔 데는 있구?"

"뭐, 이력서 몇 군데 넣었는데 아직 연락이 없네."

"흠, 요즘 경기도 안 좋고 그래서…. 잘 될 거야! 걱정 마라! 자! 원샷!"


말을 해버리고 나니 차라리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뒤로 한참을 비워진 소주 한 병과 일회용 비닐에 싸인 빈 접시를 앞에 두고 친구 녀석의 회사 자랑과 자신의 업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직원들이 얼마나 자신을 잘 따르는지부터 상사의 험담까지 절대 끝날 것 같지 않은 이야기가 이어진다. 내일 새벽 인력사무소에라도 나가보려는 계획이 무산될까 걱정스럽지만, 너무 오랜만의 사람과의 대화라서 끊을 수가 없다. 난 손님 없는 허름한 포장마차 구석에서 졸고 계신 주인아주머니의 뒷모습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친구 녀석의 허세를 흘려버리고 있다. 빈속에 소주와 약간의 음식물이 들어가서일까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지만, 친구 녀석은 안주하나 추가하지 않고 주야장천 거들먹거리고 있다. 급기야 이제는 진정한 친구의 조언이라며 같잖은 훈계에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 있다. 녀석의 오랜 자랑질과 허세에 나의 반응이 싸늘해져 갈 즈음.


"그만 일어나자. 일을 많이 해서 그런가 피곤하네." 하며 약간 굳은 표정의 친구 녀석이 그제야 일어선다.


계산하는 녀석 등 뒤에 서있자니 괜스레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내가 이놈한테 그동안 얼마를 썼는데 고작 소주 한 병과 먹장어 한 접시에 자존심 상하지 말자 위로해본다.

포장마차를 나온 친구는 조심히 들어가고 또 연락하자는 말만을 남긴 채 택시를 잡아타고 가버린다.


멀어져 가는 택시를 바라보며 "바뀐 연락처도 모르는데…" 허공에 말해본다.


어딘지도 모를 가로등 불빛 아래 덩그러니 혼자 남겨졌다. 도로 이정표를 확인하기 위해 천천히 인도를 따라 걷는다. 비 온 뒤의 늦가을 늦은 밤공기가 차갑다. 코트의 단추를 채우며 너털너털 걷는 걸음 사이사이 지나치는 자동차들의 조명에 내 그림자가 앞뒤로 요동친다. 요동치는 그림자를 따라 나의 마음도 흔들거린다. 그리고 조용히 나도 모르게 읊조린다.


"난, 택시비도 줬었는데…"


그 순간, 미간이 일그러지며 강한 분노가 내장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목구멍을 타고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어두운 허공에 크게 소리 지르며 욕을 해댄다.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차가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렇게 흘러내리는 눈물에 어둡고 차가운 늦가을의 이름 모를 거리가 출렁인다.


간신히 찾은 큰 길가로 나가는 길. 편의점 앞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사내아이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다. 살짝 겁이 났지만, 추위에 움츠렸던 어깨를 당당히 펴고 그 애들 앞을 지나는데, 한 학생이 담뱃불을 내 앞에 던진다. 움찔 걷던 걸음을 나도 모르게 멈추었다. 이내 걸음을 재촉하는데 조롱 섞인 웃음소리가 뒤에서 들려온다. 삐- 왼쪽 귀에서 이명이 들린다. 그리고 파동 같은 속삭임이 들려온다.


'너를 무시하고 조롱한 거야 그러니까 그냥 죽여도 돼. 죽여버려. 죽여버려. 죽어버려.'


아까 만난 친구 놈의 행동에 가뜩이나 폭발할 것 같은데 욱하고 명치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오른다. 고개 숙인 시선에 반쯤 부서진 보도블록이 눈에 들어온다. 순간 집어 들어 저것들을 내려칠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몸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그 보도블록 앞에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본다. 아이들이 저 멀리 서로 장난을 치며 걸어가고 있다. 다시 내려다본 보도블록에 나 자신이 한심하게 무너져 내린다.


"정신 바짝 차려! 뭘 생각하는 거야!"


스스로를 다잡아 본다. 그리고 그 보도블록을 힘차게 밟고 걸음을 옮긴다. 흐린 가로등 너머 환하게 번쩍이는 불빛들이 들어온다.


"조금 더 힘을 내보자!" 다시 다짐하며 움츠렸던 어깨를 펴본다.


차가운 밤공기가 화려한 불빛들로 따스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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