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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리나 Dec 18. 2020

잘 싸우지 않는다.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나는 다른 사람들과 싸우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이 말을 듣고 여기저기서 "무슨 소리냐. 너 저번에 나랑 싸우지 않았냐" 하며 누군가 나오면 곤란한데, 내가 기억하는 한 다른 사람과 싸운 적이 거의 없다. 다른 사람과 대립하거나 갈등관계에 놓이는 상황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 부모님이 싸우실 때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방에 들어가 숨죽이고 있기만 했던 기억이 있다. 어서 빨리 이 상황이 종료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되어서도 갈등 상황에 놓이게 되면 바로 최대한 정중하게 사과를 한다.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 어찌 되었든 나때문에 화가 났거나 불쾌하다면 사과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이다. 특히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에 보면 "싸움을 하지 않는다" 라는 내용이 있다. 싸움을 하지 않는  성향인 나는 이 부분을 인상깊게 읽었다. 하루키는 자신에게 비판적 평가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 일체 반응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심한 말을 들어도 화가 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좀 더 편하게 받아들이는 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상대방의 비난을 일리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당신은 위선자야 '라는 비판에는 듣고보니 '내가 위선적인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라고 받아들인다.


 나 역시도 비슷하다. 물론 "너는 위선자야"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비슷하게 나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듣게 되면 "그래. 그런 면이 있긴 하지 " 라고 생각하곤 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어릴 적 엄마가 "넌 참 냉정하다" 라는 말을 내게 하시면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났는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맞아. 내가 좀 냉정한 편이지" 라고 생각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성격이 도움이 많이 되었던 측면에 대해 생각한다. 즉, 냉정해서 좋지 않은 면과 함께 다행이었던 부분도 같이 생각한다.


 이렇게 말을 하면 상대방이 나에 대해 근거없는 말을 하고, 일방적으로 헐뜯을 경우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분도 있을 수 있다. 이건 다른 경우이지만, 그럴 때는 무시하거나 시간에 맡기거나 둘 중 하나이다.


 하루키는 자신의 마음이 편한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다. "연못에 빠져 다 젖은 마당에 누가 물을 또 뿌려봐야 차갑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인생이 속편한 거라고 한다면 나는 상당히 속 편하다. 오히려 '그렇게 형편없는 인간인데 비해 잘 살고 있잖아'하는 자신감이 마음 속에서 끓어 오를 정도다." 라는데 격하게 공감하는 바이다. 어릴 적 나를 떠올려보면 지금의 나는 그때에 비해 잘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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