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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리나 Jan 17. 2021

전쟁의 부조리함과 삶의 비극성

커트 보니것  『제5 도살장』


 이 소설을 쓴 작가인 커트 보니것은 제 2차 세계대전 때독일의 드레스덴 폭격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였습니다그는 당시의 기록을 작가로서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소설에서 시간과 시간 사이를 떠돌며 여행하는 주인공 빌리 필그림의 이야기는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작가 특유의 독특한 아이러니가 가득 찬 소설입니다. 

 

 소설의 도입부에는 성경에 나오는 롯의 부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느님은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과 불로 단죄하면서 롯부부는 피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 대신 한 가지 조건을 겁니다. 바로 그들이 있던 곳을 뒤돌아보자 말라는 당부였는데 롯의 부인은 살던 곳이 걱정이 되어 그만 뒤를 돌아봅니다. 그녀는 벌로 소금 기둥이 되어버립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롯의 부인이 뒤를 돌아본 것은 정말 인간적이었고 그래서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전쟁의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은  소금기둥이 쓴 것과 '실패작'이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서두에 왜 롯 부인의 이야기를 집어넣었을까요? 아마도 작가의 역할이란 롯의 부인처럼 뒤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드레스덴은 전범의 나라에 대한 공습이었지만 그 피해자들은 무고한 시민들이었습니다. 피해를 당한 이들의 이야기에 대해 그 일을 겪은 작가라면 기록을 해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기록의 필요성과 허구적 창작 사이에서 작가의 고민은 더 커졌겠지요. 작가라면 인간적인 연민을 가지고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기록하여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가지고 있었을 테니까요. 


 이 소설에서 여러번 반복되는 문장이 있습니다. 바로 "뭐 그런거지 (so, It goes)"라는 문장입니다. 이 말은 소설에서 무려 106번이나 반복되어 나옵니다.  초반부에서는 특히 누군가의 죽음을 서술할 때 마지막에 그 문장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 문장은 작가의 관조적인 시선을 보여주지만 모든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애도의 의미도 포함됩니다. 전쟁으로 인해 비극을 경험한 사람들은 너무나 많았고, 사람들은 이런 설명할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합니다. 우연한 사고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는 삶의 비극에서 명확한 인과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때문에 작가는 전쟁 중에 발생하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관조적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빌리는 시간여행자(실제로는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설정으로 나옵니다. 그는 외계인 트랄파마도어를 만나게 되는데요. 외계인은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순간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존재입니다. 마치 테드 창의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외계인 헵타포드 인들과도 유사합니다. 그래서 소설은 현재과거미래가 각각 섞여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트랄파마도어인은 빌리에게 끔찍한 시간은 무시하고 좋은 시간에 집중하라고 말을 합니다. 지구상의 전쟁을 막는다는 생각은 멍청한 것이며, 어쩔 도리가 없으므로 그냥 보지 말고 무시하라고 조언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전쟁의 비극 등  모든 것을 기억하면서 살아간다면 삶은 너무 괴롭고 비참해지므로 빌리가 시간여행을 하는 것 역시 끔찍한 과거가 현재의 삶을 지배하지 않게 살아가는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전쟁은 아이러니와 부조리 그 자체입니다. 소설에서 가장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았던 몸관리도 잘되어 있는 에드거 더비는 찻잔을 훔쳐갔다는 이유로 총살을 당하고 맙니다. 반면에 몸도 약하고 살아남을 가능성이 적었던 빌리는 오히려 살아남습니다. 전쟁의 부조리함과 삶의 비극성을 극대화시켜 아이러니하게 보여주는 『5도살장』 은 최고의 반전소설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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