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 를 읽다가 여름 과일을 생각해보다
몇 달 전에 이주혜 작가의 <자두>라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여름 과일 중 제일 좋아하는 게 자두이다보니 어떤 이야기를 썼을까 궁금했습니다. 소설은 아주 흥미롭고 인상적이었습니다. 번역일을 주로 하던 저자분이 쓴 첫 소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지요. 저는 여름 과일을 무척 좋아합니다. 여름에 태어나서 여름 과일을 좋아하는건가 싶다가도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 싶습니다. 식감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과일은 모두 즙이 많은 과일들입니다. 즙이 많은 여름 과일을 먹다보면 너무 행복해지는데요.
어릴 적 엄마는 제 생일을 잊어버리실 때가 몇 번 있었는데 미리 말하면 되는데 엄마가 기억을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 며칠 동안은 계속 꽁해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늦더라도 엄마는 생일상을 차려주셨고 그 생일상에 항상 올라가던 과일은 바로 자두였습니다. 그래서 여름하면 제게는 자두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물론 자두라고 다 좋아하는 건 아니고 피자두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보기만 해도 신 맛이 느껴져서 절로 눈이 가늘어지는데요.
<자두> 소설 중에는 피자두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소설은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나누게 되는 연대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번역일을 하는 주인공은 힘들게 번역한 원고를 출판사에 보낸 후 역자 후기를 써달라는 연락을 받게 됩니다. 미국의 여성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의 글을 번역하였는데 에이드리언 리치는 스무살 연상의 시인 엘리자베스 비숍을 만나 우연히 차를 같이 타고 가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었고 차를 타고 가면서 서로의 아픔에 대해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주인공은 두 사람이 나누었던 대화와 교감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되었고 자신이 몇 해 전 어느 여름에 겪었던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해받고 싶었지만 끝내 실패했던 어느 여름의 이야기를 " 써내려갑니다.
그 해 여름은 1994년의 여름처럼 무더웠고, 화자는 병원에서 담도암에 걸려 세 번째 입원하게 된 시아버지의 병간호를 하게 됩니다. 시아버지는 일찌기 아내를 여의고 혼자서 아들 세진을 키우신 분입니다. 그는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간 화자에게 "봄꽃보다 반가운 사람이 왔다"는 말을 할 정도로 다정하고 세련된 분이었습니다. '나'와 남편은 낮과 밤을 번갈아 가며 간호를 하였지만 거동을 못하시게 되면서 갈수록 힘이 들어 전문 간병인 황병옥을 고용하게 됩니다. 황병옥은 자신과 같은 또래였고 노련한 간병인이었는데, 어린 시절 병석에 있던 엄마의 병수발을 해야만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아버지의 병세는 점점 심해지고 섬망까지 오게 되어 영옥에게 욕을 하는 등 상황은 더 어려워져만 갑니다.
자두는 시아버지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과일로 등장합니다. 섬망에 빠져있는 시아버지는 젊은 시절 먹었던 새콤하고 달큼한 자두,겉도 붉고 속도 붉은 피자두를 떠올립니다. 한입 베어 물면 입가로 주르륵 붉은 물이 흐르는 기순네 자두와 딸인 숙이를 데리고 서울로 도망쳐온 그때를요.
이 소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해받고 싶었지만 끝내 실패했던 어느 여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믿음과 환상이 시아버지를 구심점으로 하는 가족제도 앞에서는 공고하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 소설에서 자두는 시아버지의 감추어진 과거와 폭력성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저의 기억 속에 자두는 마음을 위로해주는 과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