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떡복이로부터>를 읽다 떠오른 학교 앞 떡볶이
대학에 들어와서 2년동안 기숙사 생활을 했다. 첫 해에는 놀랍게도 9시 점호라서 9시면 기숙사로 들어와야했다. 그 다음 해에는 10시 점호로 한 시간이 늦추어졌다. 점호가 끝나면 룸 메이트들과 간식을 다같이 먹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가장 즐겨먹는 간식은 떡볶이였다. 학교 앞 시장에 떡볶이집 거리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고 한다) 거기 있는 떡볶이 집 중 민주떡볶이가 가장 유명한 집이었다. 떡볶이가 정말 싸서 더 놀랍기도 했는데 다섯 명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양도 많았었다.
어느 날 민주 떡볶이 집에 친구와 떡볶이를 먹으러 갔는데 테이블에 앉아서 먹다가 마침 판을 갈아 새 떡볶이를 만드는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순간 경악을 했던 기억이 난다. 고향의 맛, 쇠고기 ** 봉지를 하나 뜯어 한 팩 전부 쏟아넣더니(사실 한 팩 전부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수북하게 쌓이던 맛나를 기억한다.) 젓기 시작했다. 순간 눈을 의심했었다. 이 집 떡볶이의 비밀은 MSG였던 것일까. 예전에 아이가 MSG는 '마싯게' 의 약자라고 말해서 웃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당신의 떡볶이로부터>는 총 10명의 작가들이 떡볶이라는 소재로 소설을 써 엮어만든 작품집이다. 10인 10색의 이야기로 장르도 제각각이다. SF 미스테리, 좀비물도 있고, 여성주의적 색채를 띤 소설도 있다. 10편의 소설 중 <어느 떡볶이 청년의 순정에 대하여>와 <유라 TV>,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떡볶이>를 인상적으로 읽었다. 즐겁고 재미있는 이야기보다 가슴 아프고 마음이 아려오는 이야기들에 더 눈길이 갔다.
김동식의 <컵떡볶이의 비밀>은 여느 김동식 작가의 소설처럼 맨 뒤의 반전이 재미있다. 전혀 예상 못했던 반전이 펼쳐지는데 초등학교 앞 떡볶이집에서 떡볶이를 사먹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만하다. 김서령의 <어느 떡볶이 청년의 순정에 대하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스토리라서 내심 놀라면서 읽었다. 이건 내용을 적으면 다 스포가 될 것 같아서 적지는 못하지만 범죄의 희생이 되는 여성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면 좋겠다.
김민섭의 <당신과 김말이를 중심으로>는 대학원을 다녔던 사람(특히 국문과 대학원을 다녔던 사람) 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면서 볼만한 소설이다. 대학원에서 자신의 소신이나 입장을 내세우며 살아가지 못하는 심정을 아주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는 소설이다. 김의경의 <어느 떡볶이 청년의 순정>은 무겁고, 가슴 아픈 소설이다. 먹방을 싫어하고 왜 하는지 이해못하는 쪽에 가까운 나는 먹방을 본 적이 없다. 유라 TV에서 먹방을 찍어 올리는 유지와 자신도 모르는 채 성 동영상이 찍힌 효나의 이야기는 자극적 이미지를 소비하는 사람들에 대해 날카롭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정명섭의 <좀비와 떡볶이> 는 좀비 아포칼립스 세상의 떡볶이 수호 대작전 같은 소설이다. 이렇게까지 갖은 고생과 위험을 감내해가면서까지 떡볶이를 먹으려는 아이들을 보노라니 지금 편하게 떡볶이를 먹고 있는 내 자신이 미안할 지경이다. 조영주의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떡볶이>는 남편을 따라 스위스로 갔다가 40년만에 한국으로 와 한달 동안 떡볶이 여행을 하고 있는 해환의 이야기이다. 그녀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걸까. 남편은 다른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다면서 해환을 등한시했고, 심지어 아들 결혼식 날에도 좋아하는 여자의 생일이라면서 참석하지 않았다. 한국으로 와서 한달동안 위염, 장염과 싸워가면서 먹었던 떡볶이의 여정이 담담하게 이어진다. 떡볶이가 가장 맛있었던 <끼니>라는 식당은 실제로 망원동에 있다고 한다. 문을 닫는 날도 많으니 필히 전화를 해보고 가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소설에 실릴 정도로 맛있는 집이라니, 한번 가보고 싶다. 책을 읽다보면 당연하지만 떡볶이가 먹고 싶어진다. 나 역시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