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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리나 Sep 20. 2021

<천 개의 파랑>

 소설 <천 개의 파랑>은 긍정적인 가치를 가진 언어들이 가지는 힘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주제만 놓고 보자면 최근에 읽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과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행복, 그리움, 자유로움, 희망'. 이 소설에서 중요한 가치로 드러나는 단어들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이 살아갈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되새겨보게 된다. 천 개의 파랑처럼 작은 존재이지만 각자의 색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  


 2035년 미래. 경마 경기의 기수는 휴머노이드로 대체된다. 콜리는 말과 함께 달리기 위해 만들어진 기수 휴머노이드이지만 우연히 소프트 칩이 잘못 끼워져 인지학습 기능을 갖게 된다. 인간을 등에 태우고 달려야 했던 예전의 경주마들은 아무리 빨리 달린다고 해도 탑승자의 안전과 무게를 배제할 수 없었다. 기수 휴머노이드가 나오면서 탑승자의 무게는 줄어들었고 사고로 인한 죽음의 문은 완전히 소멸했다. 


 그러자 말들에게 요구된 것은 더 빠른 속력이었다. 이전까지 경마에서 말이 낼 수 있는 최고 시속은 70~80 킬로미터였으나 기수가 휴머노이드로 대체되자 최고 속도는 시속 90킬로미터까지 뛰게 되었다. 문제는 이로 인해 말의 관절은 급속도로 퇴화하게 되었다. 경주마의 수명은 1년에서 1년 반정도. 그 시기가 지나면 관절의 연골이 다 갈린 말들이 서있는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운좋은 말들은 제주도나 강원도의 초원지대로 팔려가고 대부분의 말은 안락사를 당하였다. 콜리는 흑마 투데이와 한께 달려 1위를 하지만 어느날 스스로 낙마를 선택한다. 투데이가 자신의 무게를 힘겨워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떨어진 콜리는 하반신이 부서지고 폐기처분 될 상황에 놓인다. 


 연재는 소프트 로봇 연구원이 되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고 있다. 어느날 경마공원의 마사 한 구석에서 하반신이 부서진 콜리를 보게 된다. 인지능력이 있는 콜리는 연재에게 "경기 도중에 떨어졌는데 바로 뒤에 오던 선수에게 밟혔어요. 제 실수죠. 딴 생각을 하면 안 됐는데 문득 하늘이 푸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라고 말을 한다. 콜리에게 끌린 연재는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 80만원을 주고 콜리를 사서 집으로 가져와 고치기로 한다. 




 연재의 언니 은혜는 척추성 소아마비로 다리를 쓰지 못하고 휠체어를 타고 있다. 연재와 은혜의 엄마 보경은 젊은 시절 배우로 활동했지만 건물에 불이 나서 깔리는 사고를 당한다. 3일 후 소방관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고 병원에 있으면서 소방관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 후 두 딸을 낳지만 소방관인 남편은 화재 진압 과정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다. 은혜와 연재 두 딸을 키우며 보경은 은혜와 연재에게 부채감과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보경은 집으로 들어오게 된 휴머노이드 콜리와의 교감을 통해 다친 마음을 회복하고 조금씩 두 딸에게 다가간다. 콜리는 투데이가 안락사를 당하기 전 다시 한번 행복했던 달리는 경험을 하게 만들어주기로 하고, 투데이는 경주에 나가 달리면서 행복감을 느끼기 시작하자 다시 한번 투데이를 위해 낙마를 선택한다. 


 휴머노이드 콜리는 감정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다른 존재가 언제 행복해하는지 알 수 있었다. 미묘한 떨림을 통하여서이다. 다른 존재의 행복을 위해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콜리라는 존재가 인간보다 훨씬 따뜻한 사랑을 품고 있었다. 빠른 게 제일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자기만의 속도와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나아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를 간과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류가 되었으면 바라게 된다. 희망의 가능성을 여는 여러 말들이 특히 가슴에 와닿았다. "우리에게 희망이 1%라도 있는 한 그것은 충분히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것" 이니 말이다. 


나는 세상을 처음 마주쳤을 때 천개의 단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천 개의 단어로 다 표현하지 못할, 천 개의 단어보다 더 무겁고 커다란 몇 사람의 이름을 알았다. 더 많은 단어를 알았더라면 나는 마지막 순간 그들을 무엇으로 표현했을까. 그리움, 따뜻함, 서글픔 정도를 적절히 섞은 단어가 세상에 있던가. 
천개의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짧은 삶을 살았지만 처음 세상을 바라보며 단어를 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천 개의 단어는 모두 하늘 같은 느낌이었다. 좌절이나 시련, 슬픔, 당신도 알고 있는 모든 단어들이 전부 다 천 개의 파랑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파랑파랑하고 눈부신 하늘이었다. p.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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