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어디까지 해봤니?
모임, 어디까지 해봤니?
삼 년 전, 아직은 찬바람이 불던 이른 봄의 일이다. 백일동안 매일 글을 쓰던 모임이 끝나 참여했던 사람들이 모여 뒤풀이를 하게 되었다. 온라인 공간에서 매일 만났지만 역시 모임은 직접 얼굴을 보고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게 훨씬 더 즐겁기 마련이다. 맛있는 식사와 함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던 무렵, 한 분이 제게 이런 제안을 하였다. 그동안 모임을 만들고 진행해온 과정을 글로 정리해보라고. 그 전에도 비슷한 제안을 다른 분께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 날 역시 "정리해도 뭐 특별한 이야기는 없을 것 같아요" 라고 손사래를 치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생각해보니 '꼭 특별한 이야기여야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모임에 진심이었던 제가 그동안 해온 모임은 무엇이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운영해왔는가에 대해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부캐’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프로 모임러'일 테니.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할 사람들을 모아 같이 하는 걸 유독 좋아해왔다. 언제부터 그랬나 생각해보면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특별히 모임을 좋아하는 징후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대학에 와서부터 공부모임, 즉 스터디 모임을 하기 시작했다. 논문을 쓸 때도 혼자 쓰기보다는 논문 스터디를 구성해서 함께 다독여가며 쓰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인생에서 공부 목적이 아닌 취미로서의 모임을 시작한 건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황 상 ‘혼자 보다 함께’ 라는 요구가 절실해진 시기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큰 애를 낳고 십년 터울로 쌍둥이를 낳게 되었는데 매번 새로운 문제에 부딪혔다. 예를 들면, 둘이 같이 울면 누구를 먼저 안아 달래 주어야하나 라는 상황부터 쌍둥이를 데리고 놀러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황이 다 미션처름 여겨졌다. 한 번 외출하려면 긴장해서 땀을 흠뻑 흘리는 통에 한 겨울에도 외투를 못 입던 시절이었다. 같은 상황에 있는 분들의 조언이 절실했다. 그래서 만들었던 게 바로 ‘08년 쌍둥맘 모임’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그 후 다양한 모임을 만들어서 운영해왔다. 지금은 주로 독서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했던 모임 중 가장 기억에 남은 모임을 꼽아보라면 쌍둥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모임이었던 ‘08 쌍둥맘 모임’ 이외에도 5년여 동안 매주 한 번씩 만나 반찬을 해서 서로 나누어가졌던 ‘반반(반찬에 반하다)모임’, 매월 한 개의 적금을 가입하면서 재테크를 위한 기초를 다져나갔던 ‘적금 풍차 모임’이 기억에 남는다. ‘08 쌍둥맘 모임’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7년여를 함께 했는데 매년 한두 차례 떠났던 1박 2일 여행을 떠올리면 절로 웃음이 난다. 엄마 열 명이 각각의 쌍둥이 스무 명을 데리고 삼십 명이 독채 펜션을 빌려 묵으면 다들 어디 유치원에서 단체로 놀러온 거라고 여길 정도였다.
한시적으로 기간을 정해서 하는 모임도 있었고, 시작 후 지금까지 몇 년 째 계속 이어져온 모임도 있다. 지금까지 계속 해오고 있는 모임을 몇 개 소개해보자면, 책을 읽고 매일 다섯 줄의 발췌와 다섯 줄의 감상을 쓰는 ‘오오필사’모임, 백일동안 열 줄 이상의 글을 매일 쓰는 ‘백일 글쓰기’ 모임, 매달 한 나라를 정해 그 나라의 문화, 예술, 지리, 정치, 사회, 문학과 관련하여 책을 읽는 ‘책으로 떠나는 세계여행’ 모임, 한 달에 네 권의 책을 읽고 매주 후기를 올리는 ‘지독(지치지 않고 독서하기)모임’, 매달 다양한 책을 읽고 후기를 쓰는 ‘동시에 달리는 독서열차’ 모임, 청소년 문학을 함께 읽는 ‘청소년 문학 읽기 모임’, 한 권의 책을 집중적으로 온라인에서 토론하는 ’온톡‘ 모임 등이 있고 이 외에도 20여개의 모임을 더 운영하고 있다.
보통 모임을 이렇게 많이 운영한다고 이야기하면 다들 깜짝 놀란다. 첫 번째 묻는 질문이 "그게 가능해요?" 이다. 두 번째로 많이 듣는 질문은 "왜 그렇게 많은 모임이 필요한가요? 새로운 모임을 계속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그냥 처음 만든 모임을 계속 하면 되지 않나요? " 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여러 모임을 운영하기 시작했다면 불가능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한 개의 모임으로 시작하였다가 읽고 싶은 분야의 책이 생기면서 모임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매년 두세 개의 모임이 늘어나다보니 어느새 이렇게 많아지고 말았다.
사실 여러 모임을 운영할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는 온라인에서 진행하는 모임이 많아서이기도 하다. 온라인으로만 하는 모임들의 특징은 대부분 매일 무언가를 직접 하고 공유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의 모임을 저는 '미션형 모임' 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운동을 매일 하고 싶은데, 혼자서는 귀찮고 하기 싫어서 하지 않게 된다. 하루에 만보를 걷고 싶은데 덥거나 추우면 걸으러 나가기가 귀찮아진다. 매일 책 몇 페이지를 읽고 싶은데, 바쁜 일이 쫒기다 보면 잊어버리기 일쑤이다. 이처럼 매일 무언가를 혼자서 해낸다는 건 쉽지 않다. 그런데 함께 하면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다. 비록 온라인이라도 함께 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하기 싫어도 하게 된다. 다른 분이 미션을 완료했다고 올려주면 '앗! 나도 얼른 해야겠는데" 라며 자극을 받게 된다.
이 글에서는 제가 그동안 해왔던 모임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몇 개의 모임을 소개하고, 모임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저만의 경험과 방법을 적어보려고 한다. 비대면 시대에 온라인으로도 충분히 모임을 만들어 생활의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앞으로도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꾸준히 기획하고 시도하여 '프로모임러'의 생활을 즐기면서 살아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