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강약 조절하기
"아유. 내가 말을 말아야지."
언쟁을 벌이다가 구구절절 이야기하기가 답답할 때 흔히 하는 말이다. 나도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일일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으니 그냥 입을 다물어버린다. 이런 생각이 습관처럼 몸에 배면서 생긴 성향 하나가 과정을 건너뛰고 싶은 욕구이다. 나는 이미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은 모르고 있는데 이를 처음부터 말하려면 시작도 전에 지친다고 할까.
이런 성향이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는 분야가 있다. 바로 글쓰기이다. 글과 말, 모두 내가 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한다. 글쓰기를 할 때는 일이 진행되어 나가는 과정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이 필요하다. 건너뛰면 글은 빈약해진다. 물론 의도적으로 건너 뛰는 것도 필요하다. 생략을 통해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는 경우이다. 결국 글은 강약 조절을 잘 해야만 읽는 사람이 푹 빠져서 글을 읽게 된다.
요즘 들어 글쓰기란 장인 정신과 서비스 정신이 둘 다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내가 하기 싫다고 해서 혹은 하기 어렵다고 해서 피하게 되면 못 쓰는 영역은 계속 남아있게 된다. 나는 감정이나 심리 묘사도 어려워하고, 특히 주변 환경이나 공간에 대한 묘사는 잘 못한다.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주변 배경을 전혀 스케치하지 못한다. 그냥 중심 대상만 그려놓는다.
하루키의 수필을 읽다가 에세이를 쓰는 원칙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첫째, 남의 악담을 구체적으로 쓰지 않기.(귀찮은 일을 늘리고 싶지 않다)
둘째, 변명과 자랑을 되도록 쓰지 않기.(뭐가 자랑에 해당하는지 정의를 내리긴 꽤 복잡하지만)
셋째, 시사적인 화제는 피하기(물론 내게도 개인적인 의견을 있지만 그걸 쓰기 시작하면 얘기가 길어진다)
하루키가 말한 원칙에 입각하여 내가 쓰는 글을 떠올려보면, 남의 악담을 구체적으로 쓰지 않을뿐더러 기본적으로 남의 일을 그다지 쓰지 않는다. 내 글은 대체로 나의 이야기이거나 아이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변명과 자랑은 어떨까? 아, 이건 좀 애매하다. 자랑을 하는 걸 어색해하는 편이고 조심스러워하기는 한데 아예 하지 않는다고 보기도 어렵다. 하루키의 말처럼 뭐가 자랑에 해당하는지 정의를 내리기가 꽤 복잡하다. 이건 내용이 아니라 톤으로 보아야할까? 어떤 방식으로 말하는가의 문제려나?
시사적인 화제는 글쓰기 카페에서는 아주 가끔씩 쓰기는 한다. 시사 정치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아예 안 쓰기는 어렵다. 하지만 블로그나 브런치 등에서는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쓴 시사적인 글을 읽는 것은 좋아한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에세이 쓰기의 원칙은 무엇일까? 나의 부족한 측면을 보완하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정해본다.
첫째, 디테일하게, 생생하게 쓰기 (내 글은 디테일이 약하다. 구체적으로 묘사해보자)
둘째, 대화를 가끔씩 넣어서 쓰기 (몰입감에는 대화가 최고!)
셋째, 주변에서 본 것들, 관찰을 통한 내용 쓰기 (너무 내 얘기만 쓰는 경향이 있다)
전에 내 글에 대해 피드백을 들은 적이 있다. 구체적인 과정을 건너뛰고 결론을 빨리 쓰는 성향이 있어 독자의 감동을 끌어내는 부분이 약하니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좌절했던 이야기, 힘들었던 상황) 디테일하게 써보라고 조언을 들었다. 나는 어렵고 힘들었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쓰는 것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실감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손에 잡힐듯이 쓰는 걸 연습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