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재능은 있지만 자신감이 없다면

소설 <더 와이프>를 읽으며 드는 생각

by 책읽는 리나

글쓰기의 재능은 있지만 문단의 평가에 자신이 없었던 여성과 유명해지고 싶은 열망은 있지만 글쓰기 재능이 없는 남자가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 <더 와이프>는 이런 부부의 삶을 그리고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정말 많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특히 이 소설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소설은 유대계 미국 작가 조와 부인인 화자 조안이 헬싱키행 비행기의 일등석에 앉아서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세상을 다 가진 남자처럼 행동하는 조. 그런 조를 보며 조안은 30년의 결혼생활을 드디어 마감하기로 결심한다. 세 아이들은 모두 떠났고, 이제 두려울 게 없다. 조는 노벨상만큼은 아니지만 엄청난 상금만으로도 전 세계 모든 작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핀란드의 헬싱키상을 수상하러 가는 중이다. (헬싱키 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상은 아니다)



조가 세상에 인정을 받게 된 작품은 <호두> 라는 작품 덕분이었다. <호두>는 조, 조안, 전부인 캐롤과의 관계를 담은 소설이다. 소설은 이제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 두 사람의 만남과 결혼과정을 서술해준다. 대학의 글쓰기 강좌를 맡고 있던 조는 자신의 수업을 듣고 있는 조안의 글쓰기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다. 조는 결혼 후 막 딸 패니를 낳은 아내 캐롤과 갈등 상황이다. 캐롤이 조와의 성적관계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조는 조안을 유혹하고 두 사람은 다나카 교수의 빈집에서 매주 개 산책을 핑계삼아 만나 관계를 가진다. 캐롤은 조가 조안에게 써준 글귀가 쓰여져 있는 호두를 발견하고, 조안을 찾아와 그녀의 이마에 호두를 던진다. 호두를 맞아 쓰러지면서 조안은 생각한다. 이제 새로운 자신의 삶이 시작되리라는 사실을. 그 후 조와 캐롤은 이혼을 하고, 조안과 결혼을 하게 된다.



소설은 반전의 형식으로 조가 헬싱키상을 수상한 다음에 두 사람의 언쟁과 함께 숨겼던 사실을 밝히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소설 <호두>의 원고를 읽은 조안은 형편없는 단어와 여성의 심리가 전혀 생동감 있게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지적한다. 조는 재능있는 조안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자기보고 파이나 구우란 말이냐며 불같이 화를 낸다. 조는 초고를 조안에게 고치게 한다. 결국 조안은 소설 초고를 다시 쓰게 되고, 이런 식의 과정으로 조안은 계속해서 소설의 원고를 대작하게 된다. 조안이 방에 틀어박혀서 원고를 쓰는 동안 조는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며 지낸다. 그의 바람기를 조안은 무시하거나 없는 것처럼 여기며 지낸다.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에서 수잔도 남편 매슈의 바람을 표면화하지 않는다.



글쓰기의 재능이 있는 조안이 자신의 이름으로 성공하는 것을 택하기 보다는 남편 조의 그늘에서 그림자처럼 그의 소설을 대신 써주는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재능있는 여성작가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인정받기까지 얼마나 어려운 가는 소설의 초반 일레인 모젤이라는 여성작가를 통해서도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엘레인 모젤의 소설은 자신의 지인에 의해 단 1503권만 팔렸었다. 그것도 그녀가 책을 사라고 돈을 줘서이다. 그녀의 소설은 이후 절판되었고, 그 후로도 작품활동을 했다는 소식은 없다.



조안은 평범하고 작은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 남편의 이름에 자신의 재능을 감추고 지내왔다. 남편의 전기를 쓰겠다는 너새니얼 본을 만나게 되고, 그에게 내막을 알려줄 것 처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말에서 이혼을 하겠다고 한 후 말다툼을 하다 조는 두번째 심장발작을 일으켜 죽고 만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조안은 너새니얼 본을 만나고, 그녀는 조는 훌륭한 작가였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그에게 무언가 다른 이야기를 해주겠다는 말도 함께 남긴다. 64살의, 그녀가 다시 자신의 이름으로 작가의 길을 걸아갈까?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여성작가나 비슷한 느낌의 영화들이 많다. 제일 먼저 버지니아 울프가 떠올랐다. 그녀는 <자기만의 방>에서 만약 여자가 1년에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었다면 세익스피어의 여동생도 그처럼 이름을 날린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재능있는 여성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사라져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짐작하기도 쉽지 않다.

표지 그림에 소설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여자의 손은 타자를 치고 있고, 남자의 손은 종이를 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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