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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리나 Oct 17. 2020

한 가지 색으로만 그림 그리는 아이

 

 아이가 다섯 살 때의 일입니다. 이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갑자기 한 가지 색으로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빨간 색으로만 그림을 그리고 심지어 옷도 빨간 색이 아니면 입지 않았습니다. 그림이야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옷을 빨간 옷만 입으려고 하니 몇 벌 안되는 빨간색 옷을 매일 빠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한 편으로는 걱정이 되고, 또 한편으로는 왜 그러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관련 책을 찾아 읽어보니 의외로 이 무렵에 한 가지 색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의 사례가 많더군요. 예를 들어 검정색만 사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남아의 경우가 나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억지로 못하게 하지는 말라는 조언이 덧붙여져있더군요. 처음에는 심각한 일인가 싶어 상담을 받으러 가야하나 싶었는데요. 그냥 내버려두는 게 나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빨래야 밤에 했다가 말려 입고 나가면 되었으니까요. 아니다 다를까. 다음 해가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빨간 색으로만 그림을 그리고 빨간 옷만을 고집하는 시기는 지나가버렸습니다.     


그림도 빨갛고, 심지어 이름도 빨간색으로 썼네요.


  저는 안전상의 문제가 있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허용해주는 편이었습니다. 각자의 육아 스타일과 방식이 있으므로 어떤 육아 방식이 더 낫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는 저마다 타고난 성향이 있으며 언젠가는 자라서 독립적 존재가 되겠지요. 그래서 어렸을 때만이라도 하고 싶은 걸 이왕이면 다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신이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즐거운 지를 아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색으로만 그림을 그려도 괜찮은 것일까 궁금하여 여러 그림책을 찾아보다가 니콜라스 앨런의 『피카소의 엉뚱한 바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책의 맨 앞에 보면 “내가 그림을 잘 그리기는 하지만 피카소만큼은 안 된다고 하시던 우리 어머니께” 라는 말이 눈에 띕니다. 저자 분은 어머니로부터 들은 “안 돼”라는 말이 몹시도 속상했나 봅니다. 짧은 두 줄만을 읽고도 뜨끔합니다.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되도록 “안 돼”라는 말을 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이 책은 피카소가 어떻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피카소는 젊은 시절 파리에 가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절대로 안 된다고 말을 합니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피카소는 파리로 가서 그림을 그리게 되지요. 푸른색이 좋았던 피카소는 모든 그림을 푸른색으로 그리기로 결심합니다. 실제로 파란색으로만 그린 그림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안 된다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그는 파란색으로만 또는 붉은색으로만 그림을 그립니다.    


  피카소는 얼굴의 앞모습과 옆모습을 한꺼번에 그리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사람들은 이를 한꺼번에 그리면 안 된다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피카소는 자기 뜻대로 얼굴의 앞모습과 옆모습을 한꺼번에 그립니다. 이후 피카소는 서양에서 가장 그림을 빨리 그리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림을 30초 만에 그릴 수는 없다고 말하지만 피카소는 할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는 실제로 30초 만에 그림을 그려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카소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가 됩니다. 피카소는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이 “절대 안 돼”라고 말할 때도 “할 수 있어”라고 말했던 아이였다고 합니다. 피카소가 현대 미술의 거장이라고 불릴 수 있었던 비결 역시 이런 긍정의 힘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물론 피카소니까 그렇지 라고 말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아이가 하고 싶다고 다 하게 해줘야 하는가 라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하고 싶어' 라고 말로만 하는 경우는 아니고 이를 본인이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가를 판단기준으로 삼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 인상적인 말이 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라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말을 인용한 표현이었습니다. 창작을 하는 예술가는 반드시 자신만의 소신과 세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색깔로 그림을 그리는 이야기에서 거리가 너무 멀어진 내용일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휘둘리기 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방향을 찾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실수도 하고, 길을 잃기도 하고 헤매기도 할 지라도요.       

   

 하지만 막상 아이들이 피카소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른 사람들이 안 된다고 말할 때, 자신 있게 “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보렴” 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일단 “안 돼”라는 말부터 줄여나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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