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읽는 리나 Nov 15. 2019

빗소리를 들으며 생각나는 것들


십여 년 전 LA에 살았던 적이 있다. 언어의 장벽, 문화적 차이 등 어려운 문제들이 많았지만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의외로 비가 오지 않는 기후였다. LA는 사막기후에 가까워서 1~2월 정도에 조금 오는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달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 비가 오지 않아서 1년 내내 영화 찍기가 좋아 영화산업이 발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은 쾌청한 날씨이다.

자면서 빗소리를 듣기 좋아했던 나는 비가 오지 않는 날을 견디는 게 힘들었다. 나는 잠잘 때 들리는 빗소리를 좋아한다. 어릴 적에도 자다가 비가 오는 소리가 들리면 문을 열고 나가 마당에 앉아 하염없이 비가 오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비가 정원에 떨어져 맡던 젖은 흙냄새도 좋았다. 몇 년 전 살던 전원주택에서는 3층 다락방에서 잠을 잤었다. 지붕의 소재가 마치 양철 같아서 비가 오면 소리가 정말 대단했다. 비가 거세게 쏟아지면 아이들과 나누는 서로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김연수씨의 소설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이라는 단편소설을 읽으며, 깊은 공감을 했었다. 그 소설에서는 빗소리를 사월에는 미의 음에, 칠월에는 솔의 음처럼 높아진다고 표현했다. 빗소리를 맘껏 들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은 주택에 사는 내내 항상 기쁨이 되었다.

물론 주택생활에는 기쁨보다 어려움도 많았다. 비가 남다른 기쁨을 준데 비해, 눈은 깊은 당혹감을 안겨주었다. 겨울이 오면 최고의 복병은 눈이었다. 아파트에 살면 눈이 아무리 와도 치우지 않았다고 해서 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주택은 차원이 다르다. 현관문부터 대문까지, 그리고 주차장에서 도로 입구까지 눈을 치워야 한다. 간밤에 눈이 내렸을 때는 새벽에 누군가의 눈 쓰는 소리에 잠을 깬다. 눈을 빨리 치우지 못하면, 아이들 등교도 늦어지고 모든 게 차질이 생기므로 빨리 일어나 눈을 쓸어야 한다. 처음에는 빗질이 익숙하지 않아 조금 쓸다보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온다. 몇 번 하다보면 요령이 생긴다. 좌 우 양방향으로 쓸지 않고 한 방향으로 재빨리 쓴다. 최대한 빗자루를 아래로 잡는다. 그래야 힘이 덜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눈에 대한 감성은 사라지지 않아, 눈을 쓸기 직전 발자국을 내보기도 하고, 뭉쳐보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눈을 치우는데 최소 30분 이상은 걸리기 때문에 계속 기분을 낼 수는 없다.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들어야 하므로, 최대한 대문까지 걸어 나갈 수 있는 정도만 남기고 눈을 치운다. 아이들이야 눈만 오면 신나하지 않는가. 아이들은 눈이 오면 눈사람을 만들고 눈썰매도 타고 놀았다.

난 아무래도 기후와 날씨를 꽤 따지는 편인가보다. 특히 비가 안 오는 곳은 앞으로도 살 수 없다. 그렇다고 비만 오는 곳은 더 살 수 없다. 우리나라 정도의 강수량은 딱 적당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여름처럼 한 계절에 비가 많이 오는 것도 좋다. 그동안 여름엔 너무 덥고, 겨울엔 또 너무 춥다고 늘 불평불만을 하곤 했는데, 날씨가 이렇게 변화하기 때문에 삶의 변화도 생기고 마음가짐도 다잡게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