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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리나 Nov 26. 2020

낮술에 대하여



 박준시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을 읽다가 술에 대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삶에서 술이 마음의 위안을 주는 경우에 대한 내용이었다. 많은 시인들을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몇몇 시인들의 SNS를 보면 참 술을 즐겨드시는 것 같다. 아, 이건 소설가도 마찬가지려나? 시인에 비해 소설가는 긴 흐름으로 글을 써야하니 좀 다른 느낌이려나. 생각해보니 권여선 작가의 <안녕 주정뱅이>에는 모든 단편에 술 마시는 내용이 들어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현실은 꽤 많은 것을 스스로 포기하게 하고 또 감내하게 만든다. 물론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닌 스스로가 원한 삶을 사는 것이니 불평을 길게 놓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문득 삶이 막막해지거나 아득해질 때 비슷한 상황에 놓인 친구들과 함께 마시는 술은 큰 위안이 된다. 라는 구절에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의 술자리가 문득 그리워진다. 


  그 중 낮술에 대한 부분에 눈길이 머문다.  '문학을 하는 친구들과 마시는 술은 일종의 안부를 묻는 일과 같아서 밥을 먹자고 낮에 만나도 정작 밥은 미루어두고 꼭 낮술을 먹게 된다'고 말한다. 최영미 시인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에  "낮술은 취하지 않는다" 라는 문장이 나온다는데 나 역시 이 문장이 가슴에 와서 박힌다. 


  낮술을 언제 먹었던가 생각해보니 술을 잘 마시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한두잔을 마시는 일은 있지만 취할 정도까지 마시는 경우는 이제 거의 없다. 30대때는 낮술을 참 많이 마셨다. 아이가 있으니 일찍 들어가야 했고, 또 술냄새가 나는 걸 싫어했다. 그러다 보니 밤보다는 낮에 술을 자주 마셨다. 특히 여름. 여름은 낮술 먹기가 참 좋은 계절이다. 낮술을 먹고 나와도 해가 아직 지지 않는다. 그 느낌이 좋았다. 환한데 술에 적당하게 취해 집에 들어가는 느낌이 뭔가 나만 아는 비밀을 간직한 느낌이라고 할까. 집에 들어가면 아이가 술 먹은 것을 눈치챌까봐 되도록 입을 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해서 술을 마셔야했던 간절함이 아득하고 그립다. 지금은 그런 간절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누군가 잔에 따라주면 마시고, 내가 스스로 찾아 마시는 일은 거의 없다. 가끔씩 미치도록 술을 마시고 싶을 때도 있기는 하다.  



가끔식 독서모임을 하면서 마시는 몇 잔의 맥주



  낮술은 최대한 빠른 시간에, 신속하게 먹고 헤어져서 좋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에서 저자는 '낮에 만난 보람도 없이 낮술을 먹다가 새벽에 헤어진다'고 하지만 그 정도의 체력은 애초에 가져본 적도 없는 나는  밤이 되기 전에 집으로 들어간다. 

  20대때는 술 때문에 실수도 잦았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낯부끄러운 일도 있었다.  다들 그러지 않았을까.  30대 때는 가사에, 육아에, 논문 스트레스에, 보따리 강사 시절 겪으면서 참 술도 자주 마셨던 것 같다. 주변에 술을 같이 마실 술친구들이 늘 있었던지라 즐거운 술자리에 대한 기억이 많다. 그런데 지금처럼 술을 마시지 않는 일상도 나름 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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