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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돌이 Jun 01. 2018

여권 7

보스니아, 사라예보

유럽 내 숨어있는 여행지에 대한 기사를 보다가 내가 아는 장면이 나왔다! 어! 보스니아, 하고 스크롤을 내려보니 보스니아는 아니었다. 실제 사진은 코소보. 그림 같은 다리와 모스 기둥의 풍경이 보스니아의 '모스타르'와 매우 비슷하여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딱 알맞다. 옆 동네니까 아무래도 비슷하겠지.


처음 내가 보스니아에 대해 가진 이미지는 '중동'이라는 이미지였다. 지리적으로 확연한 유럽인데도, 사람들이 유고 연방을 발칸의 화약고라 불러서 그런 것과, ‘중동의 화약고’라는 단어에 익숙해져 그 둘의 결합 효과인지 자꾸만 내겐 세르비아, 보스니아 이런 나라들은 중동의 얼굴을 한 사람들이 사는 곳 같았다. 실은 전혀 아니다.


이 곳을 여행하며 알게 된 사실은, 유럽 국가임에도 다양한 종교가 활발하다는 점이었다.

지리적으로 터키와 가까워, 오스만을 비롯한 이민족의 침략으로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포교는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4개의 종교 사원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진풍경을 만들어 놓았다. 그래, 이들은 원래 이렇게 잘 살았었다. 종교 때문에 싸우는 일 없이, 그냥 자기 종교 믿으면서 이웃과 다정하게.

세력을 얻기 위해, 혹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다름을 부각하며 차별하고, (민족이나 종교, 차별의 소재는 다양하다) 서로 배척 감정을 조장하여 결국 갈등을 폭발시켜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나쁜 놈들이 등장하기 전 까진 말이다. 우리나라의 지역감정을 예로 든다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자신의 정치 세력을 위해 '선택할 수 없는' 출생 지역에 대한 프레임을 덧씌우고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차별하거나 치별 받게 되는 웃기는, 시대착오적이고 말도 안 되는 그런 일들.


생각 해 보니, 1차대전의 발발원인 오스트리아 황태자부부 저격 사건의 장소도 우연인지 이곳 사라예보다. 사건의 그 장소, '국립 도서관' 밤의 풍경



론니 플레닛 가이드북을 보면 여행지에서 해야 할 하이라이트 같은 것이 소개된다. 예를 들면 라오스에서 라오 비어 마시기 같은. 사라예보 여행자에게 추천된 것은, ‘사라예보의 장미’를 보는 것이었다.


사라예보의 장미, 얼마나 낭만 가득한 이름인지. 그러나 이름과 다르게 사실 이것은 전쟁의 아픔이다.

‘그라운드 제로’ 목표점에 포탄이 떨어진 구멍을 전쟁이 끝난 후 빨간 페인트로 메웠고, 도시 곳곳에 뿌려진 이것을 사라예보 장미라 부른다. 실제 총격이 있었던 건물을 볼 때는, 그리고 그 건물을 아무렇지 않게 이용하는 사람들을 볼 때는 전쟁이 내 옆의 일처럼 소름이 돋았고 한기가 느껴진다. 나는 이 여행 동안 ‘네 이웃을 사랑하라’ (피터 마쓰 지음, 종군기자 출신으로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라는 말로 유명하다)라는 책을 알게 되었고 이후 스티븐 갤러웨이 작가의 사라에보의 첼리스트를 읽음으로 그 끔찍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끔찍함 보다 무섭고 불편함이 맞을 것이다. 내가 아는 그 지명들과 장소, 그리고 거기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 전쟁으로 인한 가난과 기아, 고문, 광기, 성적 착취에 대한 담담한 서술들로 이루어진 종군기자의 수기와 소설은 너무나 불편했다. 이런 아름다운 곳에서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니.

책을 읽는 내내 책장을 덮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불편함을 들춰내는 것은 불쾌하다. 그러나 불쾌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사실에 눈감으며 모른 척하며 사는 삶은 살고 싶지 않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피터 마쓰는 한국에 관해서도 매우 정통한 기자로, 올림픽 개최 이후 탄탄대로의 미래가 펼쳐질 줄 알았으나 참혹한 전쟁을 겪은 보스니아의 역사를 통해 비슷한 경험이 있는 한국의 미래에 대해서도 자신의 우려스러운 입장을 조심히 내비친다. 한국이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미래에 대한 낙관은 아직 이르다고.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 자, 여길 보라고. 여기도 너희처럼 올림픽도 치르고 잘 사는 일만 남았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참혹하게 전쟁을 치르지 않았냐고.


사라예보의 장미
도심의 건물 곳곳에서 보이는 외벽의 총탄 자국은 전쟁이 멀고 먼 시대나 공간의 일이 아님을 말해준다
전쟁의 흔적을 반만 수리 한 독특한 건물. 그들은 이렇게 잊을수도 없는, 과거를 잊지 않고 살고 있다.


실제 도심은 너무나 아기자기하게 예쁘다.

우산 모양의 파라솔들과 아기자기한 물건들, 간소해 보이는 접시의 체바피 (체바치치)는 고기+탄수화물+양파 조합으로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이 작은 구 시가지를 걷다 보면, 행복하다.라는 느낌이 절로 든다.

구시가지 뒷골목 숙소가는 길. 뒷골목 수준이 이정도 입니다
고소한 빵에 짭쪼름한 고기와 다진 양파를 싸서 먹어보세요.. 여기가 바로 헤븐
모스크 앞에 붙어있는 주의문. 재밌어서 찍어봤다 마지막은 애정행각 금지로 보이는데, 이게 너무 웃겼다 (왜??)
이 환타 너무 맛있었다 한국에도 팔면 좋겠다. 파란색 환타 음료는 뿌연 하얀색인데 레몬 라임도 아닌것이 달콤한것이 오묘한 맛


보스니아도 현재 전쟁의 흔적들을 관광상품으로 활용하고 있다. 땅굴 투어를 비롯해 전쟁의 흔적을 보여주는 day tour 가 존재한다. 그러나 공원인 줄만 알았던 언덕 한쪽에, 예술품 같이 빼곡하게 박혀있는 묘비들의 사망 년도가 같은 것, 그런 것들은 보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아픔에 물들고 싶지 않았다.


감정적인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대가일까.

구시가지의 아름다움에 심취 하면서도 자꾸만 눈에 띄는 전쟁의 흔적들이 무뎌지지 않았다. 마음이 휘청거리니 몸도 휘청 한다. 처음엔 컨디션이 저조해 단순히 배탈이 난 줄 알았다. 그러나 자꾸만 감정이 쳐지고 무릎이 꺾였다.


나는 이 여행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가장 오래 앓았다. 떠날 채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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