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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재식당 by 안주인 Nov 02. 2017

서울 서래마을 | 스시고

어른의 맛, 생일선물 밥 한 끼

<미스터 초밥왕> 때문에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되는 걸까. 한 입 먹으면 바다가 촥- 펼쳐진다거나 손끝의 온도나 물 한 방울만으로도 미세한 맛의 차이가 날 것만 같은 미식의 정점, 스시다.


20대 초반에 만나 시작한 '데이트 이꼴 맛집 탐방'으로 여겼던 우리였지만 학생이던 시절에는 돈이 어디 있었겠는가. 맛집 포스팅이 막 성행하던 즈음에 블로거들의 미식 탐방 기록에서 보이는 스시 사진을 보며 침만 흘렸더랬다. 가격도 그렇지만 바다의 도시 부산에서 회는 그렇다치고 희안하게 스시 맛집은 없었다.


20대 중반이 지날 즈음, 취업하면서 서울로 왔다. 사회인이 되고서 몇 번째 해였던가. 여름에 태어난 그는 생일 선물로 뭐 받고 싶어?라고 했더니 '제대로 된 스시 한 끼'라 답했다. 1년에 단 한 번, 생일왕이 되시는 날인데 아무렴. 그렇게 그의 생일 당일에 무려 휴가까지 써서 찾아가 먹었던 <스시고>.


이후에도 이런 *스시야(すしや; 초밥집. 그러니까 초밥 전문점) *오마카세(お任せ; 직역하면 '너에게 맡길게', 의역하면 '알아서 해줘'쯤 되는 뜻이라지. 주방장이 알아서 내주라고 맡기고 먹는 일본식 식사) 스시를 몇 번 기분 내면서 먹어봤지만 처음 먹던 이 날의 우쭐함이랄까, 머쓱함이랄까 무어라 딱히 정의할 수 없는 기분에 얹어진 맛은 다시 느끼지 못했다.


때가 되면 앞접시에 척척 놓여졌던 초밥. 하나 하나 정성스레 손질 된 재료와 구성. 입 안에 쏘옥 넣고 우물우물 먹으면서 '맛있다!' 호들갑 떨고 싶었지만 점잖게 고개만 끄덕거리던. 그러니까 그건 말하자면, '어른의 맛'이었다. 



토마토를 갈아 셔벗처럼 만들고, 오이 한 조각으로 맛과 색감을 잡았다.
새싹 채소 위에 차돌박이 한 점과 달큰한 소스.

프랑스어로는 오르되브르(Hors-D’oeuvre), 영어로는 애피타이저(appetizer), 러시아어로는 자쿠스카(zakuska), 중국어로는 첸차이(前菜), 같은 한자를 일식으로는 '젠사이', 우리말로 굳이 써야한다면 '전채'.


본 식사에 앞서 입맛을 돋우는 음식. 요즘의 신랑은 그 중에서도 *아뮤즈 부쉬(amuse bouche) 탐구에 빠져있다. 물론 사진속의 그 날은 영감을 받기보다 신기해서 감탄하는데 그치고 말았을테지만.

아뮤즈 부슈또는 아뮤즈 고엘은 단일 메뉴이며, 한 입 크기의 오르되브르다. 아뮤즈 부슈와 오르되브르와의 차이점은 고객이 메뉴판에서 아뮤즈 부슈를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하지만 요리사가 음식 하나를 정하여 손님에게 무료로 대접한다.아뮤즈 부슈는 주로 와인과 함께 나온다.아뮤즈 부슈의 어원은 프랑스어이며, 이를 그대로 번역하자면 "입을 즐겁게 하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스시 코스가 본격 시작되기 전에 사시미 몇 점이 곱게 차려져 나왔다.


흰살 생선부터 참치, 새우, 우니에 이르기까지. 쫄깃거리는 식감과 녹아 내리는 식감을 오가는 향연이었다. 마지막에 '더 드시고 싶은 것 있으십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데, 망설이지 않고 '우니!'를 외쳤던 기억. 이 날 먹었던 우니만큼 달고 향긋한 바다향을 품은 우니를 아직 못 먹었다. 




구이, 튀김, 조림, 면까지. 빠지지 않고 갖추고 있는 코스요리였다.



어른인 척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유난스러워 보였던걸까. 마지막 한 점 이었던 *후토마키(太巻き; 일본식 김초밥)차례가 되었을 때, 신랑의 앞접시에는 특급 꼬다리가 올랐다. 영광이었지. 



콩가루인지, 미숫가루였을지 고소한 가루맛이 났던 디저트 한 입.

우리가 다녀오고도 몇 해가 지나고, <수요미식회>에 '미들급(중저가)' 초밥편에 소개 되었다구요. 큰 맘 먹고 치뤘던 생일선물 한 상이었는데. 그 때보다 가격도 제법 올랐을텐데. 중저가라니! 초밥은 역시 주머니 두둑한 어른들의 음식인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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