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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Feb 11. 2024

02. 순례길의 시작, 생장에서의 하루

본 글은 작년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약 31일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발행했던 뉴스레터 [From Santiago]를 공개하는 글입니다. 1편부터 차례대로 읽어나가시길 권합니다.




“마침내 어느 날 아침, 아내는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영원히 람과 그 형제들을 잊고 살아야 할 거라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쉽사리 내가 해야 할 일상적인 업무를 내팽개칠 수는 없다고, 마스터가 내게 부과한 것은 실행이 불가능한 임무라고 애써 항변했다. 그러자 아내는 웃으며 그건 별로 그럴듯한 변명이 못 된다고 반박했다. 최근 일곱 달 동안 여행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놓고 밤낮으로 고민하는 것 말고는 내가 한 일이 사실상 거의 없음을 상기시켜 주기엔 그걸로 충분했다. 아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출국 날짜가 찍혀있는 두 장의 비행기표를 내게 내밀었다.” - 순례자, 파울로 코엘료 - 




생장으로 가는 길

순례길의 시작점인 생장(Saint Jean Pide de Port)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비행기 연착으로 경유하는 비행기를 놓쳤고, 항공사에서 마련해 준 비행기표는 무려 나를 20시간 가까이 깨어있게 만들었다. 샤를 드 골 공항 근처의 호텔에 도착한 나는 그야말로 기절했다. 다음날 아침 7시 11분 기차를 타야 했으니까 기절 말곤 방법(?)이 없었지. 초인적인 힘으로 새벽 5시에 일어나 9킬로에 달하는 배낭을 이고 지고 꾸역꾸역 기차를 타러 나갔다. 중간에 바욘이라는 도시에서 버스로 환승해야만 생장에 갈 수 있었고 그마저도 버스를 탈 수 있는 게 행운이라더라. 파리는 교통편이 바로 당일날 취소되는 일이 잦으니 그저 감사하며 생장에 도착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래 잘 왔다 이제 시작이야’ 생각했지 뭐야…?

줄인다고 줄였지만 아이패드 덕분에(?) 9킬로에 달했던 배낭







순례자 사무소, 순례길의 상징 조개껍데기

생장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순례자 사무소에서 순례자용 여권을 발급받는 일이다. 여권은 크레덴시알(Credencial)이라 부르며 이 여권이 없다면 순례길을 걷는 동안 순례자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또한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에서 순례길 완주 증명서도 받을 수 없다. 800km를 걸으며 지나는 마을, 숙소, 성당, 수도원, 가게 등에서 이 크레덴시알에 세요(sello)라는 도장을 찍고 날짜를 적어준다. 이 세요들이 모여 순례자의 길을 걸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전 세계 순례자들에게 여권을 발급하는 순례자 사무소

순례자 사무소는 모두가 자원봉사자이고 전 세계의 순례객들을 매일 맞이한다. 국적과 여권번호를 확인하고 크레덴시알을 발급(2유로)해주는데 한국인이 두 번째로 많이 순례길을 찾는다고 했다. 파리에서부터 누가 봐도 순례길 가는 한국인이다 싶은 사람이 많았는데 다 여기에서 만난 걸 보니 맞는 말이다.







나의 크레덴시알(순례자 여권)에 첫 세요가 찍히던 순간

크레덴시알이 생겼으니 나도 이제 순례자! 걷기도 전에 뿌듯함이 생겼다. 이렇게 공식적인 순례객이 되면 기부금을 약간 내고 순례의 상징인 조개껍데기를 골라 가져갈 수 있다. 손바닥 만한 크기의 조개껍데기가 한쪽에 쌓여있는데 1유로를 내고 하나를 가져와서 배낭에 달았다.

조개껍데기가 상징인 이유는 산티아고(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됐을 당시, 조개껍데기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란다. 해서 순례길과 관련된 모든 표식은 가리비 조개껍데기 모양으로 되어있다.





길의 유래상 종교적인 의미가 남아있지만 지금은 종교와 상관없이 나 자신을 찾아 떠나는 개인적인 의미의 길이 된 것 같다. 각기 다른 사연과 스스로의 의지로 이 길에 오르는 수많은 사람들은 왜, 무엇을 얻기 위해 혹은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일까?





숙소대란과 생각지 못한 문화

순례자 숙소를 ‘알베르게(Albergue)’라고 부르는데 생장에는 약 15개 정도의 알베르게가 있다(사무소 안내표시 기준). 오후 3시쯤인데도 모든 알베르게가 풀북이었다. 몸은 고되지, 알베르게마다 돌아다니며 자리 있는지 물어봐야지, 해는 뜨겁지, 배는 고프지. 잠잘 곳을 찾아 헤매고 있자니 거지가 따로 없었다. 1시간을 넘게 헤매다가 한 알베르게 주인분께서 소파베드라도 괜찮다면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고 하셔서 냉큼 '메르시(merci)!'부터 외쳤다. 진짜 너무너무너무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기서 잘 곳이 없으면 산맥을 넘어가야 다음 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너무 고마워서 자그마한 디저트를 선물로 사다 드렸는데 그게 또 감동이었는지 껴안아주셨다. 너무 좋으신 주인 내외분, 세상은 따뜻하고 살만한 곳이다(나중에 알고 보니 가수 안치환 씨가 부인분과 함께 오셔서 묵었던 곳이고 주인 내외분과 노래 부르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었다고).



그렇게 짐을 풀고 개운하게 저녁을 먹으러 나왔지만 밤 8시가 되도록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왜냐고…? 어떤 가게도 쉬는 시간이라며 주방을 열지 않았고 심지어 빵 같은 작은 먹을거리조차 없었다. 몇 시간을 굶은 탓에 생장의 식당이란 식당은 다 두드리고 다녔으나 결국 남은 건 맥주뿐! 


남부 프랑스도 그렇고 스페인도 그렇고 대부분 2-3시면 문을 닫고 ‘씨에스타(낮잠)’를 보낸 후 7-8시가 되어야 다시 오픈한다. 충격 대충격. 한국과는 너무 다르잖아! 왜 돈을 쓰고 싶은데도 쓸 곳이 없는 거지? 동네를 열댓 번은 돌았는데도 저녁 오픈이 한 시간이나 남았을 때 우리는 차라리 빨리 순례길에 오르게 해달라고 빌었다. 걷는 게 덜 힘들 것 같은 느낌(과연).


음료만 주문 가능해서 시킨 생맥주 두 잔



어딘지도 모르는 식당에서 오늘의 메뉴라며 나온 대구요리를 먹고 알베르게로 돌아와 함께 출발하는 순례자들과 으레 인사를 나눴다. 너 어디에서 왔니 즈음하는 그런 인사. 각자의 길을 걷기 전 전운이 감도는 것 마냥 조심스레 잠자리에 들며 말없이 서로를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한 달을 준비하고, 비행기를 타고, 9킬로의 짐가방을 매고 왔어도. 800km, 32일은 비현실적인 숫자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르고 나는 내일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을 걸어서 통과하게 될 것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소파베드 위에 나를 눕히고 눈을 감는 것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의 시작점을 알리는 표시


생장(Saint Jean Pied de Port)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서


순례자 여권을 받기 위해 줄 서있는 전 세계의 순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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