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작년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약 31일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발행했던 뉴스레터 [From Santiago]를 공개하는 글 입니다. 1편부터 차례대로 읽어나가시길 권합니다.
Day 3. 수비리(Zubiri) → 팜플로나(Pamplona) / 20.4킬로 / 5시간 59분
순례길에서 처음으로 만난 대도시 팜플로나(Pamplona). 어느 정도로 대도시인가 하면 팜플로나의 끝에 붙어있는 마을 버라다(Burlada)에서 중심부까지 한 시간을 걸어야 한다. 약 4킬로 정도? 그만큼 크고 생각보다도 더 아름다운 도시였다. 순례길은 다들 고행만 있다고 생각했을 텐데 아니다. 종종 만나는 대도시들은 편안하고 매력 있는 스페인을 한껏 누릴 수 있게 해준다.
헤밍웨이가 글을 쓰기 위해 즐겨 찾았다던 유서 깊은 카페도 있고 무엇보다 스페인에 와서는 어느 도시를 가든지 광장과 대성당을 찾으면 된다. 보통 대성당과 광장이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고, 광장이 그 도시의 성격과 모습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장을 둘러싼 모든 레스토랑, 카페들이 광장을 바라보며 먹을 수 있게 야외좌석이 있다.
광장을 앞에 두고 오징어 튀김과 모히또를 시켰는데 아직도 여기서 먹은 오징어 튀김 맛은 잊지 못한다. 한국에선 먹지도 않는데. 미안하지만 한국 오징어는 오징어가 아니다. 육질이 연하고 탱글 한 데다가 신선한 레몬을 갓 나온 튀김에 뿌려서 먹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먹는 얘기 하려고 한 게 아닌데 이왕 썼으니 어쩔 수 없다.
광장에 앉아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납작 복숭아를 먹으면서 멍 때리고 있으니 알게 된 몇 가지 사실.
모두가 광장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버스킹을 하고 독서를 하고 말이다.
누가 무엇을 하든 관심이 없다. 모두 자기 자신에게 집중한다.
저녁시간이 되면 광장 가운데 서점이 문을 열고, 가족이 함께 책을 고르고 구경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쓰레기는 정해진 장소에 잘 버리고 분리수거도 잘한다.
아주 놀라운 것들은 아니지만 꽤나 신기했다. 일정시간이 되면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가 광장으로 모여든다. 그리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햇살이 굉장히 뜨거운 한낮에 씨에스타(낮잠) 시간을 가지고 열기가 좀 사그라드는 시간즈음부터 광장에서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하루만 머물기 아까울 정도로 낮밤 모두 매력적인 도시였다.
팜플로나로 넘어오면서부터 원래 안 좋았던 왼쪽 발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걷는 일도 반복 활동인지라 염증이 생긴 걸까 걱정 됐지만 그래도 무사히 걸었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무사히만 걷자 하며 걷고 있다. 목적지가 3~4킬로 남았을 때 꼭 심하게 아파 절뚝이는 고비가 찾아오는데 몸이 어서 걷는 일에 익숙해지면 좋겠다. 이 날 처음으로 찾아온 고비에 비까지 내리고 있는데 도시 중심부까지 1시간은 더 걸어야 한다는 거다. 이거 정말 괴로웠다. 분명 도시에 들어왔는데 걸어도 걸어도 도착하지 않는 이 기분. 다 온 거 같은 데를 백번은 넘게 말했을 거다. 그렇지만 이제는 안다. 다 온 거 같은데 싶으면 한 시간 남았고 어 저기 마을 보인 다하면 두 시간 남은 거야... 정신 똑바로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