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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Feb 25. 2024

06. 용서의 언덕을 지나 여왕의 다리까지

본 글은 작년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약 31일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발행했던 뉴스레터 [From Santiago]를 공개하는 글입니다. 1편부터 차례대로 읽어나가시길 권합니다.




Day 4. 팜플로나(Pamplona) →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aina) / 24.1킬로 / 6시간


용서의 언덕 Alto del Perdon

저 멀리 보이지 않는 용서의 언덕을 향해

4일 차, 오늘까지 걸으면 곧 100km를 채운다. 사진 속 끝없는 하늘과 산 사이에 자세히 보면 풍력발전기가 몇 대 보인다. 왠지 저 언덕을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 역시나 저 길이 내 길 맞다.


해발 790m, 팜플로나에 전기를 공급하는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언덕에 있고 나바라의 조각가 빈센테 갈베테(Vincente Galbete)가 순례자를 주제로 만든 철제 작품으로 유명한 곳이다.

용서의 언덕은 꽤 길고 험한 데다가 가는 동안 그늘이 전혀 없어 스페인의 따가운 태양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올라가야 했다. ‘용서의 언덕’이란 이름을 갖게 된 이유 역시 원수와 오르더라도 힘든 길에 서로를 의지하다 용서할 수 있게 되어서라고 한다.

용서의 언덕 옆에는 스페인 내전에서 학살당한 무고한 사람들의 넋을 기리는 기념물이 있었다. 학살 옆에 용서라니.



용서의 언덕 Alto del Perdon


살면서 용서에 대해 생각해 봤던 적이 있던가? 용서받을 일도, 용서해야 할 일도 참 많았을 텐데. 어느 쪽이든 무거운 마음이다. 쉽사리 용서하기 어려운 분노처럼 남아있는 일들도 분명 있더라. 용서의 언덕에 도착해 홀가분한 마음으로 뒤를 바라보니 분노를 남겨 무엇하겠는가 싶다. 그 무거운 마음을 굳이 짊어질 필요는 없다. 용서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지만 어느 순간 용서해야 함을 우리 모두가 안다. 무언가를 새로 채워나가려면 비워내야 하니까. 혹시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용서받아야 하는 일이 있다면 그 무거운 마음을 용서의 언덕에서 비워내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용서해야 하는 대상이 나라면 하루빨리 스스로를 용서하기를.


용서의 언덕 바로 옆, 스페인 내전에서 학살된 무고한 사람들을 기리는 기념비




여왕의 다리 Puente románico de Puente la Reina

오늘의 목적지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까미노 데 산티아고(순례길)를 위해 발달한 마을이다. 11세기에 순례자들이 아르가(Arga)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만들어진 다리 ‘여왕의 다리’가 있는 곳이다. 6개의 아치로 만들어진 아주 오래된 다리인데 일찍 저녁을 먹고 이 다리를 구경하러 나섰다. 다음날 이 다리를 건너가지만 깜깜한 새벽녘이라 구경은 할 수 없기에.

여왕의 다리 Puente Romanico

‘여왕의 다리’ 건너편에서 노을과 물에 반사되는 다리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4일 차가 끝나가는 밤, 문득 서울에 돌아가서의 삶이 걱정됐지만 미래에 붙들려 현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쥐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앞의 풍광에 시선을 돌렸다. 오늘도 수고했다 나 자신, 잘 걸었어.










Post Card

매일 먹는 스페인의 주식. 생 오렌지 주스, 또르띠야, 아이스커피.


(이거 좀 웃기긴 하는데) 전날 저녁 남은 음식을 싸가지고 와서 간식으로 먹는 중. 스리라차 없이 순례길 못 걸었다.


알베르게(숙소)에 가면 가장 먼저 신발을 벗는 것이 원칙이다. 이번 숙소에서는 저렇게 계단에 신발을 두게 했다. 위에서 두 번째가 내 트레킹화. 그냥 귀여워서 -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aina)에 위치한 Lglesia de Santiago 성당. 온통 금(색인지 진짜 금인지는 모름)이다.


부산에서 오신 어머님, 아버님과 함께 숙소에서 만들어 먹은 저녁식사. 즐겁게 이야기하느라 와인 2병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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