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시시콜콜한 것들을 생각하
사람은 참 간사하다. 갈대 같은 마음에 따라 생각이 바뀐다.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갈 때면 버스가 어느 차보다 빨랐으면 좋을 때도 있고 천천히 느긋하게 가주기를 바랄 때도 있다. 대게 약속 시간이 얼마나 남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마가 뜨는 시간을 좋아하지 않기에 약속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 목적지에서 밖의 날씨에 기다릴 생각을 하면 버스가 천천히 달려 시간을 맞추어 주었으면 좋겠고, 약속까지 남은 시간이 촉박하면 그 시간에 늦지 않도록 달려줬으면 좋겠다. 또 음식을 배달시킬 때면 항상 빨리 오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기본이지만 음식은 오고 있고, 마감해야 할 일이 같이 있다면 천천히 와서 일을 다 끝내고 딱 벨 소리가 기분 좋게 울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진다. 기준도 없이 그때그때 나의 시간에 맞추어 세상이 돌아가길 바라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마주할 때면 나이를 의심하게 된다. 그래도 성인이라 생각하며 언제 성숙해지나라는 생각과 함께 너무 철이 들어버린 모습을 상상하면 그건 그것대로 서운해 현재에 만족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이 일상에서 마주치는 ‘나’의 모습은 가까운 사람에게나 털어놓을 시시콜콜한 이야기다. 한 개인이 죽고 사는 문제를 생각하면 세계 안보의 위협, 기후변화로 인한 멸종 등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에 더 부합한 것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말을 건넬까?’나 ‘아까 그 친구는 나의 말에 왜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등이 사람을 더 괴롭게 한다. 사람이란 존재가 쌓아온 시간이 대단하면서도 너무 바보 같아 어이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라 생각한다.
지극히 일상적이라는 것은 지극히 보편적이라는 것이고, 지극히 보편적이라는 것은 가장 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진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가 가장 중요하고 깊은 관계라 생각하고 살아왔으나 최근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일상의 쓰잘머리 없는 이야기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지속적으로 나눌 수 있는 관계가 정말 좋은 관계이자 친밀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어떨 때는 진지한 해결을 같이 고민해 주는 것보다 볼에 차가운 음료를 갖다 대주는 것이 더 위로되기도 하니까.
일상의 귀함과 삶의 감사는 별 볼 일 없는 시간에 있다. 생산성이란 찾아볼 수 없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가치 없는 시간이야말로 순도 높게 즐겁고 밀도 있게 행복한 시간이다. 그런 일상을 함께하고 공유할 사람이 있음에 감사하고 누군가에게 용기 내어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필자도 일상의 얘기를 더 많이 할 수 있고 더 많이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의 삶을 궁금해하고 가끔 안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빈번하게 하루를 묻고 답하는 날들이 누구에게나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