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의 시대에 활자를 탐하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시대와 더불어 영상의 시대다. 영상도 정속이 아닌 배속과 건너뛰기로 보는 사람이 많다. 사람은 지금도 좋은 이야기를 기다리지만 과정보다 결론과 요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특성을 볼 때 책, 그중 문학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철학을 가볍게 현대적인 언어로 풀어쓴 글이라던지 자기 계발서 등은 명확한 지침을 한다. 무엇을 해라, 무엇을 하지 마라 등의 교조적인 언어가 인기를 끄는 현상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이 어딘지 모를 소설을 왜 읽을까? 단순 이야기의 흥미를 넘어서 문학만이 줄 수 있는 효용은 무엇일까?
명제는 머리에 남지만 이야기는 가슴에 남는다. 옳은 말은 머리로 동의되고 서사는 가슴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사랑은 위대하다.”라는 명제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 문장 만으로는 건조하고 추상적이다. 단순 정보이자 명령으로서 입력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로서 구체적인 인물과 사건을 통해 명제를 증명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면 사랑은 위대하다는 명제가 깊이 새겨질 수 있다. 명제가 알약이라면 이야기는 맛과 향, 정성이 들어간 집밥과 같다. 여성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나열된 문장들을 읽는 것보다 <82년생 김지영>을 읽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야기에는 구조가 주는 안정감과 통찰이 있다. 세상은 혼란스럽다. 내게 벌어진 사건도 전후 맥락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할 때가 많으며, 연관된 인물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학에는 ‘구조’가 있다. 이 구조는 문학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잘 보이며 이는 삶을 해석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문학의 구조라 하면 가장 쉬운 것이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로 이어지는 인과관계에 관한 것이다. 이 구조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법한 것으로 우연이 난무하는 현실과 달리 명확한 설계에서 오는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독자는 문학을 읽으며 사건의 맥락을 이해하는 훈련을 하게 된다. 이는 결국 현실의 복잡함 속 행간을 읽는 능력을 향상한다.
삶을 살다 보면 개인의 한계 속에 갇히기 쉽다. ‘나’라는 세계의 벽을 허물고 타인의 우주로 들어가는 일은 인간관계에서도 중요하다.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타인을 존중하는 일. 이것이 바로 인간관계가 어려운 이유일 것이다. 관계에 기본인 배려, 공감, 이해 등은 한 개인이 이루기 어려운 것들이다. 인간은 평생 ‘나’라는 주체로 하나의 인생만 경험한다. 삶의 본질적이고 물리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런 한계를 문학은 간접경험을 통해 보완한다. 문학을 통해 성별, 시대, 국경, 상황을 초월한 삶을 엿보는 것이다. 왕이 되었다가, 살인자가 되었다가, 숲을 헤매기도 하고, 한 생명을 죽기까지 사랑하는 일을 겪다 보면 자연스레 감수성과 공감능력이 향상된다. 나와 전혀 다른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참여해 보는 경험은 사회성의 뿌리가 된다.
책을 읽지 않는 세상이라는 말은 문학을 읽지 않는 세상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책에도 많은 장르가 있고 이 글에서는 문학을 조명했지만 결국 가장 큰 문학의 효용과 읽는 이유는 ‘재미’라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세상의 많은 책들을 다 읽을 수 없는 것처럼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를 다 섭렵할 수는 없다. 더하여 내가 읽은 것을 다 기억할 수도 없다. 그러기에 내 입맛에 맞는 이야기를 골라 읽고, 읽는 순간에 몰입하여 다음 내용이 궁금해 책을 놓지 못하는 경험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문학은 현재를 살게 한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문학을 읽지 않을 때 나는 문학을 읽는다면 더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을 이해하고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측면에서 문학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