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김현정 Jul 28. 2022

에덴엔 이브만 산다.

그 '이브'에 대한 모든 것

치열하게 사는 자아와 어떻게든 죽고싶은 자아가 충돌하면 빈 가슴 부여잡고 버티는데 익숙한 자아가 나서서 개고생을 한다




울어라 울지말아라 괜찮다 괜찮지않아도 된다

그렇게 나를 달래주던 또 다른 나는 이미 사망한 지 오래라서 나는 그녀를 묻은 나무가 있는 언덕으로 가곤 한다



햇볓이 옅어지고 무섭도록 짙은 밤이 오는 줄 모르는 황홀한 초저녁쯤에 걸어간다 언덕배기에 앉아서 흙을 파고 딱딱한 나무관이 나타나면 관 뚜껑 위로 작은 인사를 보낸다

붉은 하늘을 이불삼아 그 위에 몸을 뉘인다 

흐느껴울면 내 눈물은 뺨을 타고 관을 타고 뿌리로 갈 것이고 소리를 지르면 내 목소리는 바람을 타고 가지를 타고 구름 속으로 갈 것이다 구름이 한창 무거워지는 날엔 비가되어 나의 나무를 적시고 죽은 자아를 감싼 흙은 철퍽철퍽 못난 진흙이 되어 더 깊은 바닥으로 꺼질 것이다





나를 위로해주던 자아를 한 명씩 묻으러 올 때엔

비어버린 가슴의 구멍이 유독 심하게 패어지는 것을 깨닫는다

헛것을 잘 보는 낮의 자아는 항상 이 구멍들을 매꾸는데 뜨거운 가마에 들어가 도자기로 다시 태어난 나의 심장과 폐와 장기가 마구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상당히 유쾌하게 들린다 깨지기 쉬운 나의 내장기관은 오늘도 빈수레 요란하듯 아프다고 엄살을 부린다 내 친구들, 내 사람들은 낮엔 나를 옭아매는 거미줄이었다가 밤만 되면 수증기처럼 힘없이 사라지는 유령이되곤 한다 그러니 나는 밤이 오기전에 미리미리 서둘러서 언덕배기로 향하는거다 



허물을 벗고 껍데기를 바라본다 꽤 평온한 얼굴을 한 죽은 내 가죽면상을 바라본다

허울이 꽤 아름답게 만들어져서 비어있는 그 속이 참 신비롭다

겨우 살아 그 속을 채웠구나하루 한겹, 그 껍질을 만든다고 수고가 많았구나

껍데기를 묻어주려 삽질을 시작한다




흙을 푸다보면 예전에 죽었던 자아들이 불러준 노래가 들려온다 노래는 곡소리가 되었다가 축제나팔소리가 되었다가 아주 염병을 한다 삽질이 멈추고 껍데기를 흙으로 덮을 때가 되면 고민에 휩싸인다 이 나무가 더 크면, 줄을 매달아 죽기에 딱 맞겠지 그 적당한 높이까지 자라기를 기다려야하겠지 그게 언제가 될지, 벌써 지나버린건지 잘 모르겠지만, 오늘은 아닌가보다 나무에 등을 기대고 죽어 묻힌 여러 명의 나를 발 밑에 두고 노래를 부른다 밤이 새도록 노래를 부르며 별을 이어 글자를 새긴다 오늘의 이야기는 떨어지는 이파리에 적어둘게 오늘의 이야기는 딱 이 이파리를 봤을때만 기억나게 될거야 아무도 모를거야 남들은 물론 미래의 나도 모를거야 이파리가 흙이 될 때까지 잘 숨겨두어야해 누군가가 읽으면 안돼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에만 적을거야 그렇게 딱 나만 알게될거야




어디선가 죽은 내가 불러주는 미친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낮의 자아가 정신을 차릴려고 알람소리에 집중하려할 때면

나는 지옥같은 이 쳇바퀴를 다시 시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냐는 물음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