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들이 가격을 키우는 동안 우리는 곰팡이만 키웠었다

그렇다. 나는 투자에 '투'자도 모르는 애송이였다.

by 세쌍둥이 엄마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우리는 신혼집 마련에 분주했다. 나와 신랑의 직장 위치를 감안한다면 서울의 중심지를 택해야 했고, 중심지는 턱없이 자금이 부족했다. 결국 우리는 나의 근무지 가까운 적당한 곳을 선택해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기한을 오래 두고 결혼한 게 아니었기에 우리는 투자라는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아쉽게도 나의 부모님과 그의 부모님 중에는 부동산 투자에 대한 조언을 해줄 분이 없었다. 우리는 당장 거주할 집이 필요했고 우리가 가진 돈으로 빚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적당한 가격의 겉만 번드르르한 신축 빌라를 선택했다. 유년시절 가난했던 내가 늘 노래 부르던 방 3개에 화장실이 2개 딸린 집으로 말이다.


그땐 몰랐다. 주거지와 관련된 빚이 레버리지를 일으켜 한 사람이 1년 내내 먹지도, 사지도 않고 모으는 돈 보다 더 많은 자산을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내 주변엔 그런 조언을 줄 지인은 하나같이 사회 초년생 들이었고 나의 부모님 역시 빚이 두려운 세대였다.


보증을 잘 못서서 집이 넘어갈뻔한 나의 엄마는 늘 이렇게 이야기했다. 제발 빚은 내지 말라고.. 빚내서 비싼 집에 살면 뭐 하냐고.. 그저 딸이 빚을 갚아내느라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싫었을 거다. 가스라이팅 아닌 가스라이팅을 받은 나는 깔고 앉을 집에 큰돈을 투자하는 것은 고가의 브랜드 지갑을 가지고 다니면서 막상 쓸 수 있는 돈은 없는, 겉만 번드르르해 보이는 사치스러운 사람처럼 느껴졌다. 당연히 경제관념이란 걸 배우지 못했고 돈을 관리하는 방법, 불리는 방법 역시 배운 적도 없고 보고 자라지도 못했다. 늘 빚에 허우적대는 중하층 가운데 어디쯤이 바로 우리 집이었다.


그 당시 우리가 신혼집으로 선택한 집은 17평 남짓한 신축 빌라였다. 앞뒤 동이 따닥따닥 붙어있는 필로티 주차장을 가진 빌라의 저층이었다. 집을 보러 간 날 비어있던 집은 그렇게 넓어 보일 수가 없었고 독립 후 낡은 주택에 세 들어 사는 나에겐 그렇게 깨끗해 보일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집이 마음에 쏙 들었고, 알아보느라 수고한 신랑이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우리는 깨끗해 보이는 신축 빌라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4-5년을 그곳에 살게 되었는데 저층인 데다 거실 앞의 꽉 막힌 빌라는 늘 어두웠고 겨울엔 세탁실 배수구가 얼어 세탁기를 이용할 수 없었다. 그동안 꼬물거리는 세 아이가 태어났고 아기 있는 집에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하다 보니(그것도 세 개씩) 집은 점점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였다. 신축이었지만 단열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날림 빌라에서는 외벽과 맞닿는 벽이 늘 축축했다. 그쯤 되면 우리가 그 집을 보러 갔을 때 비어있던 이유가 곰팡이 때문에 벽지를 새로 발라놨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외벽과 닿는 벽은 점점 축축하다 못해 검은곰팡이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곰팡이의 높이는 점점 더 높아졌으며 외벽 쪽에 세워둔 장롱 뒤쪽은 점점 물에 젖어갔고 급기야 곰팡이까지 옮겨 붙었다. 당시 우리는 아주 어린 신생아들을 키우고 있었기에 닦아도 닦아도 새로 피어나는 곰팡이를 피해보고자 폭신한 단열 시트를 벽에 둘러 붙였다. 우리는 그렇게 부동산에게 감쪽같이 속았고 전세를 뺄 시점 '환기 부족, 관리 미숙'이란 이유로 단열재 보강, 도배비용까지 어느 정도 물려주고 나와야 했다.


겉만 번듯한 집.. 꼭 의심을 해보고 계약해야 한다. 단 하나 잘한 점은 그 집을 사지 않았다는 것.


당시 우리가 그 집을 구할 때만 해도 빚을 아주 조금만 내면 주변의 아파트들을 살 수 있었는데 그땐 정말 무지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간다면 조금만 떨어진 OO아파트를 무조건 사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그 아파트는 현재 재계발이 되어 당시 가격의 4-5배는 넘는 가격을 이루었고 그 옆옆 낡은 아파트 역시 가격대는 비슷했지만 지금은 범주 할 수 없을 만큼 껑충 뛰어버렸다.


레버리지. 강단이 필요했다.


그것은 정말이지 살면서 무조건 적으로 필요했던 요소였다. 빚 없이 사는 삶? 그건 지금 나에게 값비싼 인생수업료로, 뼈저린 후회만 남겼다. 그걸 알면서도, 그땐 크게 와닿지 않았나 보다. 정신을 못 차렸으니까.. 4-5년 뒤 거처를 옮겨야 할 때 그 빌라를 보지 않고 계약한다는 사람이 나왔고, 우리는 4억이란 빚을 내서 지하철이 곧 개통될 역세권 아파트를 살 기회가 있었지만 빚의 구렁텅이가 무서워 포기하게 됐다. 또다시 전세로 갈아탄 것이다. 아이 셋 육아휴직을 모두 쓰고 3년이란 공백기간을 거친 뒤 막 복직한 나에게 매달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은 무조건 보장된 돈은 아닌 듯해 보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기회도 보란 듯이 놓친 우리는 그 아파트를 수시로 지나곤 하는데 지금은 그 가격보다 2배도 넘는 가격을 웃돌고 있다. 하하하. 그런데 말이다. 나는 요 몇 년 사이에 또다시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집값이 떨어질 거란 음모론? 자들 덕분에 우여곡절로 마련한 우리의 첫 집을 팔아버리고 전제를 선택하게 했다는 사실. 하하하하하.(그 이야긴 추후에 다뤄보도록 하겠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를 악물고 경제 공부 중이다. 모르면 당하니까 알아둬야 흐름을 읽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똑똑한 남들은 빚으로 집값을 불리는 동안 좁은 신축(?) 같은 빌라에서 열심히 곰팡이를 키우고 있었고,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은 비염을 심하게 달고 살고 있는 중이다.


마흔이 다되 가서야 돈 공부 중인 내가 한심하지만, 이제 다시는 속지 않을 거다. 값비싼 인생 수업료로 집을 보는 안목을 키웠고, 좋은 집을 마련하는 지혜는 장착하게 됐다.


서울의 집 값은 오늘이 가장 싸다.


다음 이야기 : 미용실에서 만난 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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