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미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불혹'
같은 풍경을 보고도 전혀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나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가 꼭 틀렸다는 뜻은 아니고, 그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삶을 통과해 왔다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저에게는 그 경계선이 20대와 40대 사이에 있는 듯합니다.
눈이 오는 날,
20대의 저는 하얗게 내려앉는 세상에서 낭만을 보았습니다. 사진을 찍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눈을 맞으며 걷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40대가 된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쁘게 쌓이는 눈 대신, 내일 아침 꽁꽁 얼어 있을 출근길 바닥이 먼저 떠오릅니다. 설렘보다 미끄러지지 않아야 한다는 걱정이 앞섭니다.
한강의 야경을 바라볼 때에도 마음이 달라집니다.
20대의 저는 그저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반짝이는 불빛과 물결, 그 안에서의 자유로움.
그러나 40대의 저는 그 풍경을 보며 문득 ‘저 전망이 보이는 집’을 떠올립니다. 낭만이 아닌, 현실적인 공간과 가격, 그리고 삶의 무게가 함께 따라옵니다.
세상의 사랑 이야기도 다르지 않습니다.
20대에는 애틋함과 설렘이 먼저였습니다. 마치 영화 속 이야기처럼 진한 감정에 몰입하고, 사랑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꼈습니다.
하지만 40대가 된 지금, 그 많은 이야기 속에서 저는 부질없음을 먼저 봅니다. 지켜내는 관계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감정보다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친구와의 약속을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졌습니다.
20대의 저는 약속이 있으면 있는 힘껏 저를 꾸몄습니다. 가장 예쁜 모습으로, 가장 생기 있는 모습으로 나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40대의 저는 생각합니다. 이 약속이 정말 나를 원하는 자리인지, 이 시간을 내가 진짜로 쓰고 싶은지. 설렘보다 ‘나를 소모하지 않는 만남’을 더 중요하게 봅니다.
술자리에서는 더 분명해집니다.
20대의 저는 “먹고 죽자”를 외쳤지만,
40대의 저는 “몸 사리자”를 먼저 떠올립니다. 다음날의 컨디션, 회복력, 그리고 책임져야 할 하루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즐거움과 감동의 기준도 변해버렸습니다.
20대에는 아주 작은 자극에도 쉽게 웃고, 쉽게 감동하고, 쉽게 설렜습니다.
하지만 40대의 저는 어느새 역치가 높아져 있습니다.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고, 감정의 파도도 쉽게 일지 않습니다. 그만큼 많은 것들을 이미 지나왔기 때문이겠지요.
결혼식을 축하하러 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20대에는 부러움과 진한 감동, 그리고 고귀한 사랑의 아름다움이 먼저 보였습니다.
하지만 40대가 되어 서 있는 결혼식장에서는, 달콤한 말들 뒤에 숨겨진 수많은 현실과 책임들이 함께 떠오릅니다. 그래서인지 그 약속들이 때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다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겨울을 대하는 자세마저 달라졌습니다.
20대의 저는 얇은 스타킹에 짧은 치마를 입고도 마냥 당당했습니다. 추위쯤은 버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40대의 저는 온몸을 단단히 감싸도, 몸이 먼저 움츠러듭니다. 이제는 멋보다 따뜻함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40대의 시선은 어쩌면 차갑고, 현실적이고, 때로는 조금은 건조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시선이 싫지 않습니다. 꿈을 덜 꾸는 대신, 허황된 기대를 덜 하는 나이가 되었고, 그만큼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20대의 낭만과 40대의 현실.
둘 중 하나가 더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저는 이제 이 현실적인 시선 안에서 조금 더 단단해진 나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조용히 스스로에게 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