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며 나는 나의 밑바닥을 마주했습니다.
세쌍둥이 아이들을 키우며
저는 소위 말하는
‘분노조절장애’라는 단어와 아주 가까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동안 애써 숨겨두고 살았던
나 자신의 ‘밑바닥’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의사소통은 되지 않는데
입버릇처럼 “내가 할래, 내가 할래”를 외치며
자기 주장만 강하게 밀어붙이던 아이들.
아이를 키워보기 전의 저는
이런 상황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가뜩이나 넉넉하지 않은 인내심이
매일같이 시험대에 올랐고,
그 시험은
가끔이 아니라
아주 자주,
아니 거의 매일 이어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제 안에서
도저히 주최할 수 없는 분노와 마주했습니다.
그 분노는
이성이라는 얇은 벽을 가볍게 뚫고 나와
폭발하듯 터지곤 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미친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던 적도 있었고,
너무 화가 나
물건을 집어던지며
소리를 질렀던 날도 많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아직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던
아주 가느다란 이성의 끄나풀이
“그래도 아이들 보지 않는 곳에서”
화를 쏟아내게 해주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면
방 한쪽으로 숨어 들어가
벽을 치거나,
발로 물건을 차거나,
도마를 숟가락으로 내리치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분노를 쏟아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화를 풀다가
정형외과를 찾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습기도 합니다.
어느 날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정수기에서
물을 빨리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딸 하나가
“내가 할래”를 외치며
서툰 손놀림으로 물을 받으려 했습니다.
저는 빨리 해야 했고,
아이를 너그럽게 지켜봐 줄
마음의 여유는
그날 제 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안 된다는 제 말에
아이는 떼를 쓰기 시작했고,
그 울음소리는
제 안의 ‘발작 버튼’을
정확하게 눌러버렸습니다.
이성을 잃은 저는
이미 받아둔
차가운 물을
울고 있는 아이 위로
쏟아붓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무엇이
저를 그렇게까지
참지 못하게 만들었는지
지금도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그 물통이 찍힌 사진을 보던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 적이 있습니다.
“슬픈 생각이 나.”
그 말을 하며 우는 아이를 보며
저는 정말
밑바닥을 보여주는 엄마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 순간을 기억하던 딸에게
저는 진심으로 사과했고,
그 일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만큼
그 사건은
아이에게도 큰 충격이었을 겁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제가 화를 내는 제 모습을 마주할 때면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이었나 싶어
저 스스로에게
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뉴스에서 접하는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들이
이해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라면
아마 짐작이 가실 겁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정말
“니가 죽나, 내가 죽나
어디 한 번 해보자”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걸
인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빠른 조치가 필요합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엄마인 나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못한다면…
정말로
뉴스에 내 이야기가 실릴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그 시기에
가족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묵묵히 저를 지지해준 남편으로부터.
항상 긍정적이었던 언니로부터.
언니는 아이들을 저와 함께 키워준
참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제 편이 되어주던 엄마로부터.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혹시 ‘분노조절장애’를 겪고 계신 분이 있다면
그건 당신의 에너지가
이미 모두 소진되었다는 신호입니다.
그 신호를 외면하지 말고
삶에 변화를 주셔야 합니다.
억지로라도
무조건 재충전의 시간을 만드셔야 합니다.
혼자 훌쩍 떠나는 여행이
가장 좋겠지만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잠시 아이를 부탁하고
심리상담센터를 찾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선택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고 의논하세요.
나를 지탱해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기대며
함께 이겨내는 겁니다.
그렇게
나를 알아차리는 것에서 시작해
나를 다독이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됩니다.
그토록 치밀어 오르던 그 화가 사실은
“나도 좀 사랑해줘”라고
울부짖던나의 ‘내면 아이’였다는 사실을요.
부모는
줄 수 있는 사랑을
모두 쏟아부었다고 생각해도
아이들이 느끼는 사랑은
어쩌면 제한적일지 모릅니다.
그 제한적인 사랑을 느끼며 자란
어린 시절의 내가,
나도 받지 못했다고 느꼈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를 보며,
아마도
‘분노조절장애’라는 이름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와
표현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감정을
조금 더 일찍 이해했다면
육아는 조금 더 수월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걸 이해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조금 더 나은 엄마가 되었을 텐데 하는
후회스러움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밑바닥을 경험하고 있을
엄마들을 떠올리며
이 글을 씁니다.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아이보다 먼저
나의 내면의 아이를
한 번만 더
돌봐주라고
말해주고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