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고 무겁고 무겁다
나는 흙수저다.
IMF 시절에도 못살았던 나는
IMF 가 왔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워낙에 낼 금도 없었기 때문에
그러던 내가 어른이 됐다.
시골 소녀가 서울에 입성해 열심히 노력한 결과
나는 이제 흙수저 딱지쯤은 뗄 수 있겠나 보다 했다.
엄마 아빠의 늦은 결혼과 출산으로
내가 사회 초년생이 되자마자
아빠는 퇴직을 하게 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제 막 사회생활을 하게 된
나의 언니마저 암으로 무너지게 된다.
꿈 많고 하고 싶은 게 많았던 나는
이제 막 돈을 좀 벌어볼까 하던 찰나
나를 책임지던 가족의 가장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부단히 노력했다.
짬짬이 내가 하고 싶은 것도 하면서
학자금 대출도 갚아가면서
집에 생활비도 보태면서
그렇게 나는 성인이 되어갔다.
그러던 나는 눈 깜빡할 사이에
엄마란 세상에 발을 들였고
세 쌍둥이라는 세 아이를 얻었다.
어떻게 지났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세월이 흐르고 돌아보니
내가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두배로 늘었다.
이제는 나이 드신 부모님과
두 번째 암 발병으로 삶이 완전히 무너진 언니
그리고 나만 바라보는 세 아이까지..
물론, 신랑이란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고 해도
내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열매가 너무나도 많다.
이젠 버티기 힘들 만큼 자라 있다.
너무나도 무겁다..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어보고자
아무리 치열하게 살아봐도 나는
제자리걸음을 하는 느낌이다.
밑 빠진 독에 물만 부어대는 느낌이랄까
내가 버는 돈은
나에게 온전하게 쓰이는 경우가 없다.
가끔 엄마에게서 들려오는 친정 소식은
달갑지만은 않다.
연세 많으신 엄마는
어디가 아프다.
뭘 해야 하겠다.
뭐가 고장 났다.
어디에 간다.
.
.
.
꼭 돈을 보태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책임감이 먼저 든다.
못난 자식이 제 살길 찾아가느라
부양의 의무를 소흘히하는건 아닐까.
괜스레 미안해진다.
이젠 엄마의 소식이 부담스러워진다.
나는 불효녀인가 보다.
딸로 산다는 것
누군가의 자식으로 산다는 것
그리고 그 딸이 엄마가 되어 산다는 것
그 딸의 무게는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다
사는 내내 고단했을 우리 엄마
나도 호강 한번 시켜주고 싶다.
그런 날이 과연 올까..?
가끔은 나도 꼬마 아이 마냥 펑펑 울고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