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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Apr 13. 2022

화(火) 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

#집사부일체- 과학자 정재승 편


집사부일체에서 과학자 정재승 씨가 나온 편을 보게 됐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설득력 있게 도입부부터 단계적으로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주제까지,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연인이 서로 사랑할 때 일어나는 뇌의 반응, 여성과 남성의 호르몬 변화에 의한 뇌의 반응은 남녀의 다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더 나아가 '인간'이라는 자체를 좀 더 알 수 있게 해 줬다.


특히 클라이맥스(climax)였던 마지막 주제인 '사랑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가슴까지 울리며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끝나자, 나는 가벼운 영화 한 편을 본 듯 감정이 일상생활까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어떤 감정을 느끼도록 너무나 잘 짜인 AI가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을 듣다 온 것 같은 왠지 모를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정재승 과학자는 마지막에 '우리는 어떤 상황일 때 화를 내는가?'로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대해 아직 과학계에서는 충분한 대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굳이 화를 표현할까?' 우리는 내 의도대로 되지 않을 때, 상황을 통제하고 싶은데 충분히 통제하지 못할 때, 내가 위협적인 존재인 것처럼 보여서 좀 더 상황을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화를 낸다고 한다. '그럼 우리는 살면서 누구에게 가장 화를 많이 낼까?'




나를 인지하는  영역(내측 전전두피질) 타인을 인지하는 영역이 나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가깝게 저장되어 있고 특히 한국인의 경우 나를 인지하는 영역에서 '엄마' 같이 인지한다고 한다. 나와 엄마를 동일시하여 '하나'라고 생각하고 너무 사랑한 나머지 ' 생각대로 했으면하는 마음에 화를 낸다고 한다. 사실 이것은 한국의 연인관계의 경우에도 많이 일어나는 일이다. 상대방의 싫은 점들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 너를 위한 거야'라는 말로 상대방을  의도대로  취향으로 바꾸고 싶어 한다. 우리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체로 존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각각의 고유한 자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라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먼저 정재승 과학자가 말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화'와, 인간으로서 권리와 자유가 침해되었을 때의 '화' 그리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의'를 참지 못하고 느끼는 '화'는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 상황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어린아이처럼 감정적으로 표출하는 짜증 섞인 '화'는 당연히 지양해야 한다. 사실 이런 건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는 교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안다. 부모님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연인에게 화를 내면 안 된다는 것을, 단지 우리가 '교양'으로 여겨졌던 추상적이고 도덕적인 영역이었던 것이 뇌과학의 논리적 근거를 통해 과학적인 영역으로 '사실'로 판명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되도록 '화'를 내는 것이 인간적이라고 느껴진다. 화를 내지 않는 것보다는 화를 내는 방식어떤 일에 화를 내야 하는지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모든 사람이 화를 내지 않아도 상대방이 내가 '불편하다'라는 것을 알아차리면 좋을 텐데 현실은 그러지 못하다. 내가 '불편함'을 표현해야 상대방이 알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내가 불편한지 모르고 계속 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친구를 멀리할 것이고 심해지면 마음에 병이 생길지도 모른다. 사람은 표현을 해야 상대방의 의사를 알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화'도 중요한 표현의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 표현하는 방식 '' 표출한  대화를 통해 서로를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화가 나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험한 말이 나갈  있지만, 최대한 이성적으로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사람' 아닌 '문제' 집중하여 '' 표출하고 대화를 통해 합의점에 도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화를 냈던 일이 다음번에  화가 나고, 점차 감정 경험들이 쌓이면서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도 이해하게  '' 내는 일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정재승 박사님이 말씀하신 무력감 없이 세상을  마음대로 통제할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인간의 권리와 자유가 침해되었을 때의 '불쾌함'과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의'를 참지 못하고 느끼는 '화'는 꼭 필요하다. 우리의 의도대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어, 마치 '개'가 호랑이를 보고 짓는 것으로 보일 순 있지만, '화'를 표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혹은 지금의 문화, 관습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일지라도 끊임없이 주장하고 표현해야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1980년대 젊은 대학생들이 불의에 참지 못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열정적으로 정부에 '화'를 표출했기 때문에 우리가 현재 민주주의 사회를 이룰 수 있던 것이다. 당시 몇몇 어른들은 그런다고 바뀌지 않는다며, '화'를 내지 않기를 바랐고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지금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참혹한 전쟁은 어떠한가. 이것 또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니 화를 낼 필요도 없는 걸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단지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낼 때를 알게 되는 것이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고, '화'를 낼 일이 없는 세상이 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다. 역사가 보여준다. 우린 AI가 아니라 감정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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