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해요. 생일날 대단한 거 안 하거든.
고등학교 친구들 네 명이 대화를 나누는 카카오톡 채팅방이 있다. 결혼 전엔 매일같이 이야기가 오가던 방인데 지금은 다들 직장생활에 애 키우는 것까지 병행하다 보니 주고받는 메시지 수가 확실히 줄었다. 한 달에 한두 번쯤 연락하는데, 사실 먹고사는 일이나 집안 살림 하는 것 그리고 애 키우는 일상이 다 거기서 거기라 큰 사건 사고가 없으면 다들 잘 지내겠거니 생각한다.
어제는 친구 중 한 명이 다음 달 둘째 출산을 앞두고 곧 출산휴가가 시작된다며 대화를 시작했다. 곧이어 무더위에 아픈 데는 없냐며 서로 안부를 묻다가 또 다른 친구 한 명이 지난달 지나간 내 생일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생각해 보니까 anna 생일 지난 거 아니니?
생일 축하한다. 2주나 지나고 이야기해서 너무 미안하다.
아휴 진짜 anna 생일 홀랑 지나가버렸네. 너무너무 늦었지만 축하해.
난 생일이 얼마나 지났는지도(세어보니 사실 3주 지났음), 친구들이 생일날 축하를 해줬었는지 안 해줬었는지도 잊고 있었다. 개의치 않고 있던 터라 서운한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게다가 내가 카카오톡 생일 알람을 꺼놨기 때문에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축하받는 일은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알아채고 축하해 주는 것이 의아한 일이다. 무안해하는 친구들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 너스레를 떨며 답장을 보냈다.
생일 안 챙겨도 된단다. 난 매일 생일같이 사니까!
생일날 뭐 했냐고 친구가 물었는데 글쎄, 뭐 했더라? 휴대전화 갤러리와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찾아봤다. 생일이 평일이라 그전 주말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서 파스타를 사 먹었다. 하우스 와인도 한 잔 마셨다. 생일 당일에는 아침에 아이 등원 시키고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집에서 종일 일했다. 아이를 하원시키고 놀이터에서 굴리고 있는데 신랑이 꽃다발을 들고 나타났다. 마침 같이 있던 동네 친구가 동영상을 찍어줘서 기록할 수 있었다. 집에 들어와서는 소곱창을 배달시켜 저녁 식사를 든든하게 했다. 그리고 신랑이 생일 선물로 현금과 로또 종이를 건네줬다. 낭만과 실리를 모두 잡은 생일선물이었다. 그날 로또가 당첨되었다면 세기의 생일선물일 거라고 이야기했었는데 결과는 낙첨이었다. 여하튼 다시 생각해 봐도 매우 즐거운 생일이었다.
생일을 이렇게 보내고 만족했으니, 매일을 생일처럼 사는 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10년 전엔 안 그랬다. 생일날 앞뒤로 몇 날 며칠씩 약속을 잡고 특별한 에피소드를 만들려고 정말 애썼다. 평소에는 가지 않던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고, 뮤지컬을 보고, 술을 진탕 마시고 사람들 속에서 노래를 불러가며 성격에 맞지도 않는 파티걸이 되려고 갖은 노력을 했다. 물론 그때는 그게 세상의 전부였고 엄청 재미있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그렇게 하라면 하지도 못할뿐더러 흥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나이가 드나 보다.
매일을 생일처럼 보내기. 가능하다. 오늘 저녁에 소곱창을 배달시키고 오늘이 또 생일이지, 생각하면 된다. 이걸 적다 보니 다른 생각은 안 들고 소곱창만 생각난다. 그래도 오늘은 소곱창 말고 어제 만들어둔 강된장을 먹어야지. 양배추 쪄서 메밀밥에 듬뿍 싸서 먹어야지. 오늘이 진짜 생일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