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안나 114
눈을 뜨자마자 날씨를 살폈다. 흐렸다. 오늘은 스냅사진을 찍기로 한 날인데. 비가 올 것 같았다. 기분이 안 좋았다. 마침 스냅 작가님에게 연락이 왔다. 비가 조금 온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괜찮을 것 같다고 소품이나 옷을 챙겨 오면 좋을 것 같다는 메시지였다. 날씨 때문에 오늘, 내일 예약을 해 둔 상태였다.
나는 얼른 컴퓨터를 켜 파리 날씨를 검색했다. 내일은 맑음이었다. 작가님에게 내일 찍으면 안 되겠냐고 말했다. 그렇게 내일로 약속을 잡았고 나는 이 선택을 두고두고 후회할 줄은 몰랐다. 사진 촬영이 미뤄져 조금 여유로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수기를 조금 더 보충하고 3시쯤 답답함에 집을 나섰다.
하늘이 정말 우중충했다. 소품을 쓸 모자를 득템 할 수 있을까 싶어 오랜만에 킬로 샵에 갔다. 적당히 둘러보다 영상 촬영 구상을 위해 생 제르망 데프헤 주변을 서성이는데 횡단보도를 건너오던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무얼 찾냐는 거였다. 나는 웃으며 찾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니혼진?”이라 묻더니 한국인이라는 내 말에 “안녕하세요.”와 “안녕히 계세요.”를 말하던 그 할아버지는 왠지 길거리에서 여자들을 꼬시기 위해 외국말을 배운 변태 영감 같았다.
어쨌든 계속 프레임을 생각하며 거리를 떠돌다 보니 곧 비가 내렸다. 버스를 타고 시청역으로 가려했는데 하필이면 그 길이 공사 중이라 그냥 걸었다. 예술의 다리 앞에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멍 때리고, 영상을 구상하며 한 참을 앉아 있었다. 건너편에 모델인 듯 예쁜 여자 한 명이 카메라를 보며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날씨가 좋아질 기미가 안 보여 집에 가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노선도를 살피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 옆을 보니 한 외국인 남자아이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놀라니 굉장히 무미건조한 사과를 건넸다. 일부러 쳐다본 것 같은데 그냥 웃어넘기고 루브르로 갔다. 95번 버스는 항상 사람이 많다. 힘들게 집에 도착해 쉬다가 뚜왈렛을 했다. 오후 일과는 잘 생각이 안 난다. 내일은 제발 날씨가 좋기를 바라며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