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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Nov 17. 2022

열기구

파리의 안나 117

여전히 밤에 잠이 잘 안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찍 눈이 떠졌다. 몸은 피곤한데 왜 쉽게 잠에 들지 못하는 걸까. 현재로선 큰 고민도 걱정도 없는데 말이다. 어제의 여파로 목도 칼칼하고 기운도 없었다. 임무 수행을 마치고 억지로 아침을 먹은 뒤 ‘냉정과 열정사이’를 읽었다. 파란색은 남자 주인공 시점인데 개인적으로 정말 싫은 스타일이다. 전 여자 친구를 못 잊는 찌질한 집착 남 같다. 주황색은 여자 주인공 시점인데 초반부를 조금 읽다 말았다.


왜 다시 또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 무기력한 상태가 되어 버린 거지. 오전엔 누워서 그렇게 자책하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씻으러 갔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화장을 하니 좀 정신이 돌아왔다. 어제보다 오늘 훨씬 더 예쁘다. 아쉽군. 나갈 준비를 했다. 할아버지와 한인회에 등록을 하러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함께 88번 버스를 타고 재불 한인회에 갔다. 등록을 하러 왔다고 하니 돈만 내면 끝이었다. 인적 사항을 적거나 여권을 보거나 하는 절차는 없었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군. 할아버지의 지인 분께서 주신 15유로를 내고 나도 한인회에 등록이 되었다. 이제 12월 3일, 선상에서 열리는 선거&만찬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거다. 그날 식권 값도 할아버지 지인 분께서 내주시겠다고 했다. 이유는 당연히 본인을 뽑으라는 거였다. 도대체 한인회 회장 타이틀이 뭐라고 얼굴도 모르는 나 같은 애한테 총 35유로를 써 가면서 투자를 하는 거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인회 등록이 너무 쉽게 끝나서 기껏 준비해주신 차를 마시는데 시간을 보냈다. 빨리 나가고 싶었지만 차가 너무 뜨거워 급히 마실 수도 없었다.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한인회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에서 할아버지와 헤어졌다. 나는 자벨 역 근처 공원에 갈 계획이었다. 다시 88번 버스를 타고 공원 역에 내렸다. 버스에 나와 흑인 남자아이들 두 명 밖에 없어서 왠지 무서웠다. 하지만 나랑 다른 방향으로 가서 안심했다.

공원 안으로 들어가니 여유로운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진으로 봤던 열기구도 있었다. 날씨가 흐려서 운행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곳곳에서 사진을 찍고 공원을 한 바퀴 돈 후에 에펠탑이 보이는 방향으로 걸었다. 그러다 마주친 자유의 여신상! 도대체 어디 있나 궁금했는데 우연히 만나니 더 반가웠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저 멀리 열기구가 하늘 높이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운행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손님이 없었던 거구나. 근데 조금 허무했다. 그냥 높이 올라갔다 다시 내려가는 게 끝이었다. 어쨌든 좋은 구경 잘했다.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70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오랜만에 사진 정리를 하고 저녁을 먹은 뒤 오랜만에 불어 공부를 했다. 그러던 중 승찬 오빠가 보정 사진을 몇 장 보내주었다. 오글거리고 좋네. 자연스러운 사진도 있었고 내 얼굴이라 슬픈 사진도 있었다. 어쨌든 곧 사진들을 받게 될 듯. 수기를 조금 써 내려가다 진도가 나가지 않아 닫아 버렸다. 이제 마무리 단계인데 항상 결론이 어렵다.

저녁 임무 수행도 끝났으니 오늘은 일찍 자고 싶지만 잠이 올진 잘 모르겠다. 내일은 오랜만에 운동을 하러 가야겠다. 이번 주는 오랜만에 하는 게 많네. 항상 결심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느슨해지는 것 같다. 내가 게으른 탓이겠지. 기운 없는 건 오늘로 끝내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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