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안나 121
서머타임이 끝나니 왠지 하루에 한 시간을 더 자는 느낌이다. 유후. 일찍 일어나 씻고 준비를 했다. 눈 화장을 하는데 오른쪽 눈을 끝내고 왼쪽 눈을 시작하려는데 뚜왈렛이 왔다. 결국 짝짝이 눈으로 임무 수행을 완료했다. 나머지 눈 화장을 한 뒤 할머니와 함께 아침을 먹고 머리를 말렸다. 10시 40분쯤 나가려고 쉬고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두려웠다. 하루 만에 일 하기 싫어지다니. 어쨌든 40분에 나가 식당 앞으로 갔다.
그런데 문이 잠겨 있었다. 불은 켜져 있었는데 사람은 안 보였다. 결국 문 앞에서 5분 정도 기다리다가 나를 발견하신 큰 이모가 문을 열어 주셨다. 겉옷을 벗어 둔 뒤 머리를 질끈 묶고 청소를 시작했다. 어제저녁 손님이 컵을 깨서 유리 조각이 있었다. 청소를 마치고 반찬을 세팅한 뒤 걸레질을 하고 큰 이모를 따라 지하실에 내려가 와인을 가지고 올라왔다. 아침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핫도그 빵으로 대충 배를 불리고 손님을 기다렸다.
12시 오픈인데 딱 한 팀 오고 1시까지 손님이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1시부터 다섯 테이블이 들어왔다. 한꺼번에 몰리니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는 게 조금 헷갈렸다. 하지만 첫날치고는 무난하게 해낸 것 같다. 큰 이모와 작은 이모가 조금 기가 센 분들이라 쫄았는데 잘해주신다. 손님들이 다 나가고 테이블 세팅을 다시 하는데 내가 실수를 했다. 그래도 처음이니 크게 뭐라고 하진 않으셨는데 좀 무서웠다. 2시 40분쯤 큰 이모께서 가보라고 하셨다. 휴.
일을 끝내고 나니 배가 고팠다. 자연스레 살이 빠질 것 같다. 집에 도착해 승훈 오빠와 재민 오빠가 보내 준 사진을 저장했다. 그리고 쑥뜸 아주머니가 오셔서 인사드리고 방에서 쉬었다. 할아버지께서 부르실 때마다 잠깐 나가 도와드렸다. 5시가 조금 넘어 뚜왈렛이 왔고 애경 어머니는 집에 가셨다. 임무 수행 후 디카 하나 들고 산책을 하러 나갔다. 하늘이 분홍색이었다. 사진으로는 잘 표현이 안 됐다. 서서히 어두워지고 앙발리드쯤 가니 조명들이 켜지기 시작했다.
역시 파리는 밤이 예쁘다. 한참을 걸어 에펠탑까지 갔는데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팠다. 비아켐 역에서 지하철을 타려고 에펠탑 주변을 쭉 걸었는데 결국 역은 못 찾았다.
결국 다시 에펠탑을 지나 트로카데로 역으로 가는데 정말 짜증 났다. 나 스스로에게.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덥고. 지하철을 탔는데 사람도 많고. 겨우 집에 들어와 언니가 차려 준 밥을 맛있게 먹었다. 식사 후 불어 공부를 하는데 여덟 시 반에 뚜왈렛이 왔다. 일찍 저녁 임무 수행을 마친 뒤 공부하고 씻었다. 일을 하니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