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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Dec 01. 2022

생각하는 사람

파리의 안나 127

이제 8시 전에 자동적으로 눈이 떠진다. 피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조금 뒹굴 거리다 일어나 씻었다. 아침을 먹고 임무 수행을 한 뒤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의 목표는 로댕 미술관, 퐁피두센터, 개선문 전망대다. 한시가 바쁜데 할아버지께서 심부름을 시키셨다. 엊그제랑 어제 내 개인 일정 때문에 뚜왈렛을 제대로 돕지 못했으니 군말 않고 했다. 마트에 가서 물과 파, 토마토를 샀다. 배추도 사 오라고 했는데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싱싱한 것도 없어서 안 샀다.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 시간이 11시 반. 나비고를 충전하지 않고 티켓 젠느를 샀다. 3.75유로에 하루 무제한 티켓이다. 지하철을 탔는데 카톡을 하다가 내릴 곳을 지나쳤다. 그것도 두 정거장이나. raspel인가 하는 역에 내려서 반대편으로 갔는데 7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겨우 몽파르나스 역에 가 13호선으로 갈아타고 varenne인가 역에 내렸다. 줄이 길 줄 알았는데 바로 들어갔다. 정원을 구경하는데 역시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생각하는 사람’ 동상이었다. 역광이라 사진이 멋있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다각도로 찍었다. 그리고 정원을 한 바퀴 빙 돌며 작품을 감상하고, 장미 사진을 찍었다. 사실 로댕 작품은 생각하는 사람 말고는 아는 것이 없어서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박물관도 들어갔는데 금방 돌고 나왔다.

그렇게 첫 번째 미션을 완수하고 다시 지하철역으로 갔다. 샹젤리제 클리멍쏘 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 시청역에 내렸다. 브리오슈 도헤에서 샌드위치를 사 먹고 갈까 하다가 사람들이 얼마나 있나 확인하기 위해 바로 퐁피두로 갔다. 줄은 생각보다 짧았다. 그냥 사 먹고 올 걸 후회했지만 그냥 조금 더 저렴한 근처 노점에서 사 먹기로 했다. 우연히 발견한 노점에서 샌드위치와 음료가 단돈 5유로라 망설임 없이 주문했다. 주인아저씨는 내가 외국인인 걸 알고 영어로 설명해주었지만 나는 꿋꿋하게 불어로 말했다. 닭고기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고르고 토마토를 빼 달라고 요청했다. 음료는 환타 오렌지를 골랐다.

기분 좋게 계산하고 니키 분수 앞에 앉아 점심 식사를 했다. 그런데 바람이 너무 많이 불었다. 게다가 분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입을 아 벌리고 샌드위치를 먹기가 민망했다. 자리를 세 번이나 옮기고 나중엔 좀 짜증이 나 그냥 퐁피두를 바라보며 서서 먹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퐁피두로 입장. 가방 검사는 정말 대충 받고 위로 올라갔는데 앞서 가던 아저씨가 뮤지엄 패스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혹시 오늘 무료가 아닌가 싶어 마담에게 “마담, 오쥬흐디 농 프리?”하고 이상한 질문을 던졌는데 그녀는 “어쩌구저쩌구 4”라고 대답했다. 4층으로 올라가라는 말이었다. “아~”하고 뒤돌았다가 순간 어디로 올라가지? 하는 생각에 다시 뒤를 도니 마담 옆의 입구를 가리키기에 민망하게 웃으며 “메흐씨”했다. 밖에서만 바라보던 그 빨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갔다. 입구부터 아주 번쩍번쩍 전광판들이 맞이해주었다. 꽤 큰 규모의 미술관이었다. 꼼꼼하게 구석구석 다 보려고 노력했다. 현대미술은 참 난해하고 어렵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작품들이 많았다. 5층까지 있었지만 다리가 너무 아파 올라가진 않았다. 이렇게 두 번째 미션도 완료.

마지막 미션인 개선문을 향해 가기 전 오랜만에 구제샵을 한 번 쭉 돌았다. 득템은 실패했다. 또 가방 지름신이 왔지만 가방만 사대는 것 같아서 살며시 놓았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샤를드골 에뚜왈 역으로 갔다. 앉고 싶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다. 결국 도착할 때까지 서 있었다. 파리에 와서 처음으로 개선문 밑에 갔다. 사진을 찍고 바로 올라가는 입구로 향했다. 끝없는 계단의 향연. 다리 아픈 건 둘째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중간에 쉬는 곳에서 잠시 앉아 땀을 식히고 다시 올라갔다. 그리고 드디어 정상! 바람도 시원하고 탁 트인 전망에 기분이 좋았다. 한 바퀴를 쭉 돌며 파리 시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역시 가장 예쁜 건 에펠탑이다. 에펠탑과 함께 셀카를 찍고 있으니 옆에 있던 여자가 찍어줄까? 하고 물어봤다. 웃으며 거절하고 혼자 여유를 만끽했다. 힘들다. 4시쯤 집에 가려고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갈 때가 더 어지러웠다. 겨우 지상에 도착해 무명용사의 무덤 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저녁 일과는 항상 그랬듯이 뚜왈렛, 식사, 뚜왈렛. 저녁을 먹고 에펠탑 조명 쇼를 보러 나가려다가 과식을 하는 바람에 몸이 무거워서 포기했다. 티켓 젠느가 아깝지만 그래도 4번이나 썼으니 본전은 찾은 것 같다. 주말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바쁘게 살았던 탓도 있지만 일을 하니 괜히 더 그런 것 같다. 비가 내린다. 내일부터 다시 알바몬! 힘내자. 얼른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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