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안나 128
밤새 비가 많이 내렸다. 요즘은 알람이 울리기 전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물론 몸은 깨지 않지만. 부스스하게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고 씻었다. 간단히 화장을 하고 임무 수행 뒤에 알바 갈 준비를 했다. 일주일 만에 이렇게 가기 싫어지다니. 나가기 바로 전까지도 침대에서 뒹굴었다.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덜덜 떨며 식당에 도착했더니 큰 이모가 왜 그렇게 춥게 입고 왔냐고 하셨다. 청소부터 시작하여 반찬 세팅까지 하다 보니 몸에서 열이 났다. 시장에 다녀오신 작은 이모를 도와 짐을 나르고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 월요일이라 꽤 한산했다. 예약 전화가 많이 왔는데 죄다 이모들에게 넘겼다. 손님이 별로 없어서 생각보다 수월하게 일을 마쳤다.
식당 서빙을 하며 느낀 점은 한국 손님들은 나를 하대하고, 프랑스 손님들은 동등한 입장에서 존중해준다는 것이 차이다. 내가 실수를 해도 웃어 넘겨주는 프랑스인들 덕에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모들이 왜 한국 손님들보다 프랑스 손님들에게 더 친절한지 깨닫는 순간들이 많았다. 뜻밖의 월급도 탔다. 지난달 고작 4일을 일하고 벌써 급여 명세서가 나왔다는 것이 신기했다. 물론 봐도 모르는 말들 투성이었지만.
큰 이모께서 계산기로 내 급여를 확인시켜주셨다. 하루에 28유로, 4일 일해서 112유로, 세금 46.97유로 떼고 65.03유로인데 팁으로 5유로 더해서 70유로를 챙겨 주셨다. 와, 월급이라니. 기뻤다. 기분 좋게 인사를 드리고 나와 월급 기념으로 빵집에 가서 타르트 4개를 샀다. 집에 도착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나눠 먹은 뒤 쉬었다. 늦은 오후부터는 비가 계속 내렸다.
외출은 글렀고 오후 임무 수행 후 깨끗이 샤워를 했다. 저녁을 먹고 예산을 짜고 빈둥거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비는 계속 내린다. 이제 슬슬 유럽 여행 계획을 세워나가야 할 때다. 돈도 벌고 있고, 시간도 충분하고, 정보도 넘쳐나니 잘 정리하는 일만 남았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얼른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