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안나 131
드디어 목요일! 조금 늦잠을 잤다. 아침을 먹고 임무 수행을 하고 씻고 준비하려니 시간이 촉박했다. 일 하기도 전에 피곤했지만 그래도 내일 쉬니까 힘을 내서 출근했다. 오늘은 작은 이모 없이 큰 이모와 둘이 일하게 됐다. 긴장됐지만 그럴수록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했다. 미리 디저트도 만들어 놓고 최대한 준비를 많이 해두었다. 드디어 손님들이 들어왔고 정말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그래도 겨우 2주 차인데 저번 주에 왔던 손님들이 또 오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얼굴이 익숙한 분들이 오면 더욱 고맙고 감사했다. 한꺼번에 주문이 밀리니 대기 시간도 길어졌는데 그래도 손님들이 큰 불만 없이 기다려줘서 다행이다. 말도 잘 못 알아듣고 소소한 실수를 해도 손님들이 웃어 넘겨주니 일할 맛이 난다. 정신없는 시간들이 지나고 2시쯤 손님들이 쫙 다 빠졌다. 주방은 마치 전쟁을 치른 듯 어지러웠다. 설거지를 하고 테이블 세팅을 마친 뒤 큰 이모가 차려 주신 밥을 먹었다. 휴. 작은 이모가 없으니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더 일이 잘 된 것 같다. 다만 불어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어서 심리적으로 조금 불안했다.
어쨌든 무사히 일을 마치고 인사를 드린 뒤 밖으로 나왔다. 솔페리노 다리까지 걸어갔다 올 생각이었는데 너무 춥고 피곤했다. 그냥 집에 갈까 하던 차에 길에서 한 할아버지가 한국말로 말을 걸었다. 인사를 해주니 한국 영화제에 갔었냐며 이것저것 질문을 해서 대답해주니 커피나 한 잔 하자기에 거절했다. 말이 점점 길어져서 나는 일을 하고 와서 피곤하다고 하고 작별 인사를 했다. 바로 집에 들어가기엔 집이 노출되는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몽파르나스 타워 쪽으로 걸었다. 날씨가 너무 추웠다. 왜 걷는지도 모른 채로 걸어 영화관 주변까지 갔다. 요금을 보니 한 달에 20유로 정도에 무제한 티켓이 있었다. 다음 달에 사볼까?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리가 아파 터덜터덜 걸었다. 집 앞에 파란 가방을 멘 할아버지가 있어서 망했구나 싶었는데 다행히 다른 사람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병원에 갔다가 방금 들어오신 것 같았다. 할머니를 침대로 옮기는 것을 도와드리고 방에 들어와 쉬었다. 오늘까지 일을 했으니 좀 쉬고, 내일부터는 공부, 계획, 외출을 해야겠다. 일을 하니 시간이 더욱더 빨리 간다. 알찬 주중이 되는 것 같아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