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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Jan 09. 2023

나는 꿈속에 산다.

파리의 안나 135

월요일이다. 정말 남자친구한테 연락이 없었다. 나쁜 놈. 씻고 아침을 먹었다. 민향 언니가 어학원에 가지 않아서 시간이 조금 널널했다. 임무 수행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뒤 가방을 챙겨 식당으로 갔다. 날이 많이 추워졌다. 건조함에 얼굴도 텄다. 큰 이모께 인사를 드리고 청소부터 반찬 세팅까지 끝냈다. 작은 이모는 오랜만에 뵙는 것 같았다. 월요일이라 손님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조금 추웠다. 열심히 뛰어다녀야 땀도 나고 좋은데 오늘은 천천히 걸어 다녀도 충분히 모든 주문을 커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조금 배가 고팠지만 점심도 먹지 않았다. 주말 내내 집에서 뒹굴 거린 죗값을 치러야겠다고 생각하며. 30분 일찍 일을 마쳤다.


내일은 프랑스 국경일이라 쉰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일이라고 한다. 한국은 농업인의 날 혹은 빼빼로 데이인데. 내일 쉬는 대신에 수목금 일을 하기로 했다. 날이 많이 흐렸다. 그래도 산책이나 할 겸 앙발리드를 향해 걸었다. 쌀쌀한 날씨. 비수기라 관광객도 별로 없고 쓸쓸했다. 지나가던 커플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더욱 씁쓸했다. 다리가 많이 아팠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걸었다. 알렉산더 3세 다리 밑에 잠깐 앉았는데 갑자기 시상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연락 온 고등학교 동창과의 대화에 영향을 받은 시다.


Paris (부제 : 꿈)

꿈속에 산다.

간절히 바라던 꿈.


누군가는 여전히 원하는

그런 꿈.


나는 꿈속에 산다.

깨어질 것을 알기에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한

그럼 꿈속에 산다.


시를 쓰다 보니 남자친구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오늘 쉬는 날인데. 뭐 하고 있으려나. 솔페리노 다리에 앉아 버킷 리스트의 목록을 추가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나는 참 정리나 계획을 좋아하는 것 같다. 한참을 앉아 있었더니 몸이 으슬으슬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튈르리 정원을 지나 콩코르드 역으로 갔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곧장 솔페리노 역으로 갔으면 집까지 더 가깝다. 지하철에 사람도 많고 입구에서 아줌마, 아저씨들이 느릿느릿 움직여서 조금 짜증이 났다. 집에 오니 책상 위에 우편이 하나 와 있었다. 은행에서 보낸 수표책이었다. 쓸 일은 없겠지만 신기하고 좋았다.


저녁을 먹기 전까진 인터넷 서핑을 했다. 오늘이 워홀 공모전 발표일인데 아무런 소식이 없다. 사실 조금 기대하고 있었다. 다시 읽어도 좀 잘 쓴 것 같은데 결과가 아직 안 나왔다. 공지사항을 계속 확인해 보았지만 새 글은 없었다. 장려상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1시가 되어가던 시간, 남자친구가 사진을 하나 보내왔다. ‘은지야 빼빼로도 못줘서 미안’이라는 글씨와 귀여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솔직히 진심으로 매달리면 봐주려고 했는데 얼른 자라는 나의 말에 순순히 알겠다고 대답하는 그가 미웠다. 사실 나도 한 달은 좀 힘들 것 같다. 그래도 당분간 시간을 가지는 것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조금 힘들겠지만 참아보려 한다. 오늘부터 다시 불어 단어&속담 공부도 시작했다. 피곤하다고 미루거나 넘기지 말고, 할 건 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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