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안나 139
간호조무사가 너무 일찍 와서 여덟 시에 강제 기상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나가니 그 말 많은 아줌마였다. 그래도 나름 수월하게 임무 수행을 마치고 씻었다. 민향 언니가 또 어학원을 안 가서 할머니 아침은 내가 드리지 않아도 괜찮았다. 화장하고 머리까지 다 말린 뒤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알약 바이러스 검사를 했는데 악성코드가 4개나 발견됐다. 알바 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치료 후 시스템 종료’를 선택한 뒤 집을 나섰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식당에 도착해 청소를 하고 모든 준비를 끝낸 뒤 손님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카드 기계가 어제부터 말썽이더니 오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작은 이모가 할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식당에 오셔서 기술자와 대신 통화를 해 주시고 가셨다.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손님이 많진 않았다. 수월하게 일을 끝내고 다시 식당에 오신 할아버지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이모들의 총각김치는 정말 맛있다. 밥을 다 먹고 식당 장바구니를 빌려 카지노에서 물을 두 묶음 사서 집에 가져다 두었다. 근데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끄는 것도 충분히 무거웠다. 장바구니를 식당에 가져다줘야 해서 이모가 물 한 묶음을 사고, 먹고 싶은 걸 사 먹으라고 10유로를 주셔서 다시 카지노에 갔다. 물 한 묶음과 먹고 싶었던 과자를 산 뒤 식당으로 갔다. 물과 장바구니, 거스름돈을 드리고 인사하고 나왔다.
집에 도착하니 3시 반. 피곤했다. 혹시 모르니 다시 한번 바이러스 검사를 했는데 다행히 추가적으로 발견되는 악성코드는 없었다. 지혜 언니가 오늘 저녁 아홉 시 반에 친구를 만나는데 혹시 올 수 있냐고 물었다. 귀찮기도 했고 민향 언니가 갑자기 외박을 한다고 하셔서 그냥 집에 있겠다고 말했다. 저녁을 먹고 급히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 95번 버스를 타고 밤의 파리를 관찰했다. 7시 반이었는데도 너무 어둡고 가게들도 거의 문을 닫아 썰렁했다. 박물관에 도착해 간단히 가방 검사를 하고 입장을 했는데 지갑을 여니 학생증이 안 보였다. 저번에 학생증을 여권 지갑에 넣어 둔 것이 떠올라 절망스러웠다. 혹시 여권이나 비자 사진으로 입장이 가능한지 물어보려다가 그냥 앉아서 하염없이 검색만 했다.
휴대폰 쓰리지가 잘 안 터져서 결국 검색도 포기하고 기념품 숍을 구경했다. 혹시 까르네가 버스-지하철 환승이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메트로에 갔는데 사용 불가였다. 결국 걸어서 오페라까지 산책한 뒤 한 바퀴 돌아 피라미드 역에서 95번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요새 조금 일찍 자서 그런지 10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하품이 쏟아졌다. 이제 저녁 임무 수행도 마쳤으니 얼른 씻고 자야겠다. 내일은 11시에 몽마르트르에서 미화 언니를 만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