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안나 141
밤새 또 비가 왔다. 뚜왈렛이 늦게 와서 조금 늦잠을 자고 아주 늦은 아침을 먹었다. 할아버지께서 성당에 가시자 민향 언니가 기다렸다는 듯 어제 이야기를 꺼냈다. 어젯밤 집을 구해서 나가겠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나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어본 이유가 밝혀졌다. 언니는 참 이기적인 사람이다. 어쨌든 떠나야 할 사람은 떠나고 남아야 할 사람은 남는 거겠지만. 본의 아니게 언니 때문에 내 상황이 조금 곤란하게 된 셈이다. 어쨌든 나는 2월 말에 이 집에서 나간다. 언니도 그전에 집을 구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이미 정해진 일이었지만 마음이 조금 복잡했다.
1시까지 지혜 언니가 새로 이사한 집에 놀러 가기로 했는데 간호조무사가 11시 반이 넘는 시간에 와서 1시 반으로 조금 약속을 미뤘다. 임무 수행을 마치고 집에서 라면 두 개를 챙겨 집을 나섰다. 언니가 새로 이사한 집은 이브리였다. 쁠라스 디딸리 역엣 7호선으로 갈아 타 폭트 드 이브리에서 내려 언니에게 연락했는데 알고 보니 폭트 드 슈와지에서 더 가까웠다. 혼자 집을 찾아가면서 문득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며 언니네 집을 찾아가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브리는 프랑스 같지가 않았다. 이민자들이 많은 곳이라 풍경도 더 낯설었다. 하지만 언니 집 주변은 주택들이 예뻐서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
집에 도착해 아직 나가지 않은 언니의 연하 남자친구와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곧 남자친구가 떠나 언니가 라면을 끓여줬다.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들을 쏟아내느라 시간이 어떻게 간지도 모르겠다.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고 맥주까지 한 캔 했다. 그동안에 비는 더욱더 쏟아졌다. 역시나 5시쯤 뚜왈렛 때문에 집에 가야 해서 인사를 하고 나왔다. 비가 너무 많이 와 신발이 다 젖었다. 역까지 무사히 찾아가 집에 도착했는데 이미 뚜왈렛은 끝나 있었다.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한 뒤 남은 주말을 즐겼다. 일주일이 참 빨리도 가는구나. 내일부턴 다시 일하러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