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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Feb 09. 2023

빈티지 숍 구경

파리의 안나 147

눈을 뜨자마자 배가 아팠다.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는데 휴지가 별로 없었다. 최대한 아껴 쓰고 창고에 갔다. 그런데 창고에도 여분의 휴지가 없었다. 아침을 먹으며 할아버지께 화장실 휴지가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직접 사다 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이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사주셨던 필수 용품인데 갑자기 각자 사서 쓰라니. 휴지 그거 몇 푼이나 한다고. 정말 쪼잔 해 보였다. 내가 특별한 대답을 하지 않자 공용 동전지갑으로 직접 사 오라는 말씀을 하셨다.

아침을 먹고 씻은 뒤 간단히 화장을 하고 내 지갑도 챙겨 나갔다. 카지노에 가 제일 먼저 젤리를 골랐다. 오아시스 음료수와 콜라보된 신상 하리보를 장바구니에 담고 화장실 휴지를 골랐다. 12개짜리를 샀는데 얼마나 갈는지 모르겠다. 계산을 하러 가다가 화장품 코너에서 저렴한 스킨, 로션을 발견했다. 꼼꼼히 성분을 읽고 사용법을 익힌 뒤 하늘색 크림을 골랐다. 계산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70번 버스를 탔는데 사람이 많아 서서 가야 했다. 오랜만에 갈색 부츠를 신었더니 또각또각 소리도 너무 크고 발도 아팠다. 시청역에 내려서 충동적으로 BHV 백화점에 갔다. 예쁜 옷들이 너무 많았다. 세일 기간이었지만 그래도 나한텐 비쌌다. 위층으로 올라가니 신발 매장이었다. 나의 드림 슈즈인 닥터마틴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역시 비쌌다. 버버리에서 빨간 트렌치코트도 구경했다. 무려 715유로였다. 하지만 가격에 비해 디자인이 별로였다. 바로 위층에 또 올라가니 크리스마스 용품과 문구류 매장이었다. 이것저것 구경하고 백화점에서 나왔다. 결국 모든 것이 그림의 떡이었다.


항상 그렇듯 마레지구에 왔으니 빈티지 숍 구경을 빼놓을 수 없었다. 킬로샵에 갔는데 내가 원하던 버팔로 운동화가 있었다. 사이즈도 나에게 딱 맞을 것 같았다. 상태도 좋았고 색상도 남색으로 무난하니 예뻤다. 고민하다 신어봤는데 정말 편했다. 조금 헐렁한 느낌이 들어서 찍찍이를 쪼이려고 당겼더니 툭 하는 소리가 났다. 찍찍이를 고정하는 고리가 끊어진 것이었다. 아무래도 구제 신발이라 디테일이 조금 약한 것 같았다. 직원에게 들키기 전에 다시 신발을 고이 올려놓고 얼른 샵을 빠져나왔다. 만약 그 고리만 부러지지 않았어도 내가 카드라도 긁어서 샀을 텐데 아쉽다. 조만간 새로운 신발이 입고될 수도 있으니 또 들러봐야지. 프리피스타에선 별로 득템 할 게 없었다. 사실 이제 구제에도 흥미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어쨌든 3군데의 매장을 전부 돌았다.


발바닥이 너무 아파 쉬고 싶었지만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피곤했지만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엔 아쉬워서 보주 광장을 찾으러 갔다. 다행히 내가 간 방향이 맞았다. 빅토르 위고의 생가도 있다던데 사실 어딘지 잘 몰라 지나쳤을 수도 있다. 보주 광장 앞에 휴대폰 케이스 매장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 케이스를 봤다. 신기하고 웃겨서 사진까지 찍었다. 싸이가 정말 많이 떴구나, 하고 느꼈다.

처음 가 본 보주 광장은 그냥 공원이었다. 대칭이 잘 되어있는 공원. 사람이 많아 벤치도 꽉 찬 상태였다.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멍 때렸다. 괜히 부츠를 신고 나와서 발바닥만 아팠다. 팔아 버릴까. 한참을 앉아 있었더니 몸이 으슬으슬했다. 해가 비추지 않아 좀 추웠다.

집에 갈 요량으로 한 바퀴 돌아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69번 버스를 타고 앙발리드 앞에서 내릴 심산이었다. 다음 역에서 한국인 커플이 탔는데 하필이면 내 바로 뒷자리에 앉아 원치 않게 대화를 엿 들었다. 남자가 참 말이 많았다. 타지에서 한국말을 듣게 된다는 건 그다지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루브르 역에서 기사가 다음 차로 갈아타라고 하는 바람에 내려서 95번 버스로 갈아탔다. 까르네로 버스-버스 환승은 처음 해봤다. 지금까지 이걸 모르고 있었다니. 어쨌든 앙발리드에서 내렸을 경우보다 훨씬 편하게 집에 왔다. 물론 95번은 항상 사람이 많아 앉아서 올 순 없었지만. 집에 도착해 쉬다가 뚜왈렛을 하고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연속으로 예능을 챙겨 봤다. 저녁 뚜왈렛은 오지 않아 뒤늦게 씻고 조금 늦은 시간에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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