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밤

파리의 안나 09

by Anna

날씨가 여전히 안 좋다. 일기예보를 보니 이번 주 내내 흐리고 비가 온단다. 내 운은 벌써 끝난 건가? 아침을 먹고 한숨 자고 일어나니 밖에서는 청소하는 소리가 들리고, 방 안에는 나 혼자밖에 없었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프랑프리에서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와 주스를 사서 에펠탑을 보러 갔다.

공원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파리지엔이 된 듯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다. 지나가는 외국인들이 나를 쳐다봤다. 내가 그들을 보는 시선과 같은 시선으로. 날씨가 좀 쌀쌀했다.


장소를 이동하기 위해 여행 책을 폈다. 바토무슈를 타러 갔던 역 근처에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라는 미술관이 있는데, 입장료가 무료였다. 추운데 여기나 가야지, 하고 에펠탑과 인사한 뒤 지하철을 탔다. 출구로 나가서 지도를 봤어야 했는데 그냥 내 발을 믿어보자는 심정으로 걸었다가 또 길을 잃었다. 그런데 어떤 건물 앞에 검은색으로 컬러를 맞춘 사람들이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건물은 지방시였다. 옆 건물은 생 로랑.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 싶어 얼른 왔던 길로 돌아갔다.


지도를 보니 대충 감이 잡혔고, 확신은 없었지만 미술관을 향해 갔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자 경비원이 가방 안을 보여 달라고 해서 흔쾌히 검사를 받고, 구경을 하려는데 이게 웬일인가. 사람들이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내가 책에서 본 ‘입장료 무료’는 도대체 뭐지? 혼자 안절부절못하다 그냥 입장해보려고 하니, 여자 경호원이 뭘 찾냐고 물었다. 당황하여 “non, non”하고 매표소 앞 설치된 의자에 앉았다.


다시 책을 펴니 ‘팔레 드 도쿄’가 아니라 바로 옆에 자리한 ‘파리 시립 근대 미술관’이 무료였다. 게다가 오늘은 월요일이라 휴관인 날이었다. 결국 헛걸음한 셈.

그냥 유유자적 또 걸어서 센강 쪽으로 갔다. 걷다 보니 그물침대 같은 곳이 있어서 누워 쉬고 싶었는데 치마라 참았다. 그냥 앉아서 강을 바라보는데 너무 추웠다. 유람선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알렉산더 다리 쪽으로 걸어갔다.

날씨만 좋으면 완벽한 하루였지만 너무 추워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지하철 안으로 들어갔는데 무슨 역인지 모르겠어서 지하철 노선도를 한참 들여다보고 있었더니 친절한 지하철 직원이 어디에 가냐고 물었다. “Je vais..” 순간 낭테르 빌이 생각이 안 나서 손으로 RER A선을 가리켰다. 그랬더니 직원이 오페라 역에 내려서 갈아타라고 알려줬다. “Merci, beaucoup” 하고 무사히 숙소로 돌아갔다.


저녁엔 내일 니스로 떠나는 룸메 언니와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이제 언니 떠나면 나는 누구랑 노나. 아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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