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에
하늘이 높고 파랗다. 단풍이 들고 있는 중이다.
낙엽이 되어 흩어진 나뭇잎을 보면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싶어 진다.
말라가고 있는 정신을 느낀다.
너, 나 할 것 없이 주변의 사람들은 일에 묻혀 살고 일에 묻혀 잠든다.
그것이 정신이 말라가고 있다는 증거다.
나는 오래전부터 메마르고 있었다.
이제
하늘을 향해 내 마음을 벗어던지고 싶다.
파란 물이 들것처럼 차갑고 맑은 하늘을 향해...
점심시간을 접어들고 밖으로 나왔다.
한 손엔 묵주, 한 손엔 시집 한 권
운송차량들이 즐비한 물류단지 내를 걸으며 산책을 한다는 건 모험이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 맑은 가을 하늘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않은가.
어릴 적엔 꿈이 없었다.
그냥 공부를 해야 한다기에 공부를 했고 학교를 가야 한다기에 학교를 갔고
취직을 해야 한다기에 하려고 애를 썼을 뿐
내 맘은 늘 파란 하늘 깊은 곳에 숨어 있었다.
왜 거기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면
시집을 한 권 만들기 위해 그랬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꿈이 없었는데 꿈이 생긴 것처럼 느껴질 때가 간혹 있었다.
발갛게 단풍이 드는 가을이었다.
비가 내려 은행잎이 떨어지는 가을이었다.
주차장을 돌아 벚나무잎이 붉게 물들고 있는 나무아래 섰다.
책을 펴고 마스크를 벗고 앉아 시 한 편을 읽었다.
이문재 선생의 <노후>라는 시였다.
우리는 늙을 수도 없다.
늙을 수조차 없는 우리의 노후대책은 단 하나
절대 늙지 않는 거, 죽을 때까지 절대 죽지 않는 거
죽을 때까지 죽도록 일하다가 결국 혼자 죽어 가는 거
그러니까 우리의 죽음은 순직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순직
기억을 더듬어 꿈꾸던 가을로 산책하는 점심시간이
오늘의 노후대책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