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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솔 May 20. 2024

첫 캠핑

비 오는 날에

작년부터 들썩이며 세웠던 캠핑계획을 드디어 실행했다. 90%가 며느리의 추진력이다.

우리 집 애들의 실행력도 그렇지만 묵묵히 따라가는 나도 능구렁이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첫 캠핑지로 서해바다가 보이는 태안군으로 정했다. 

주말이 되니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시작부터 날궂이 하게 생겼다. 

그래도 첫 캠핑에 대한 설렘으로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마음이 들떠있다.


바다가 보이는 캠핑장엔 이미 빗소리를 들으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팀들이 보였다.

우리도 집을 짓자! 아들과 며느리가 바쁘게 움직인다.

텐트를 내려 바람을 넣다 보니 집 한 채가 턱 하니 일어선다.

에어매트에 바람을 넣는 버튼 하나 누르니 침대가 하나 생긴다.

뚝딱뚝딱 테이블을 설치하고 의자를 탁탁 펴서 늘어놓으니 주방이 생겼다. 

참 신기한 세상이다.


내가 학생 때 친구들과 캠핑을 가면 텐트 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몇 명이서 이쪽저쪽 잡아당기고 망치질을 하고 줄을  연결하고 

쓰러지지 않게 고정하느라고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힘들었지만 황홀했던 그 젊은 날의 기억이 오늘의 일정을 

맛나게 하리라.


나는 우리 귀염둥이 아기와 차 안에서 집이 다 지어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비를 맞으며 나와 아이를 위해 열심히 텐트를 치고 있는 아들과 며느리가 대견했다. 

매트리스 위에 침낭을 하나씩 던져놓고 아래에는 전기장판을 깔고 우리 네 식구의 

아담한 침실을 만들어 놓았다.


비가 내리는 중에도 아기와 나는 바다가 보이는 풍경 속으로 산책을 했다. 

바다엔 물이 빠져 뻘이 생겼지만 빗줄기가 거세어져 들어가 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텐트촌의 저녁풍경도 볼만하다.

고기를 굽고 라면도 끓이며 빗소리를 듣는 사람들. 

토독 토독 토도독 

빗방울이 떨어지며 텐트에 부딪쳐 내리는 소리가 정말 앙증맞고 귀엽다. 

마치 우리 로리가 종알거리며 웃는 소리처럼 간지럽기도 하고  자장가 소리처럼 달콤하기도 하다.


밤늦도록 음식을 먹으며 술잔을 부딪히는 팀이 있는가 하면 우리처럼 아기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잠들어버리는 그런 집도 있다. 빗속에서 긴장하고 잠자리를 만드느라 고단했는지 가볍게 저녁 한 끼 하고는 

다들 잠이 들고 말았다. 나는 천장으로 떨어져 부딪히는 빗소리를 즐기느라 밤을 새운 것 같다.

닭 우는 소리에 밖으로 나와 커피를 내린다. 

그리고 온전히 내 것인 아침을 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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