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구십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산책을 마치고
흡연실에 앉아 있다
사진으로 보았던 늙은 간디의 얼굴도 보인다
하얀 연기 속 침묵은 길고
땅으로 꺼진 눈동자가 기억의 동산을 더듬는다
어디까지 거슬러 오르는 걸까
타들어가는 담배를 쥐고 있는 손가락
연기는 가라앉고 재는 떨구지 않아 아슬아슬한 거기까지
천천히 눈을 들어 당신을 바라보는 눈과 마주치자
여기가 어디야?
요양 병원이잖아요
다시 눈을 내려 땅바닥을
아니 그보다 더 깊숙한 곳을 더듬거리는 아버지
담배 한 개비 태우려 산책 나온
내 아버지는 생각에 잠긴 철학자다
아니
그냥 백지처럼 깨끗하고 맑은 아이다
굴곡진 한 세상이 다 빠져나간 듯
고독한 노인의 과거를 거둔 흡연실
아버지!
담뱃재 털어야지
희미한 눈동자가 떨고 있다 휠체어가 흔들린다
담배 한 개비의 재보다 더 가벼워 보이는
아버지의 이마와 팔
시월의 바람이 도닥여도 재는 털지 않는다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에서 숨 쉬고 있는
희미한 생명의 불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