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림 같지 않아?
나는 그림 보는 것을 아주 좋아해.
그림 속엔 내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는 세계가 있어.
난 아직 말을 잘하지는 못해.
그래도 그림을 보고 있으면 하고 싶은 말이
생기는 것 같아.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좋아하는 그림 속엔
반짝반짝 별이 있어.
우리 고양이 미오가 얼마 전에 별이 되었거든
미오는 별이 되어서 달님에게 놀러 간다고 했어.
그래서 난 달이 좋아.
예쁜 그림이 많이 그려져 있는
그림책도 너무 좋아.
할머니가 그림책을 읽어주실 때
나는 책 속의 그림이 된 것 같기도 해.
슬프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때론 무섭기도 하지
할머니는 가끔
"로리야 그림 그리자~" 하며 크레용을 주셔.
동그라미를 그려봐, 세모를 그려봐 하시는데 잘 안돼.
내가 잘 그리는 것은 비가 죽죽 내리는 그림이야.
그것도 잘 그리지는 못해.
난 아직 두 살도 안된 아기가 맞잖아.
엄마가 며칠 전부터 미술관에 데려가주시려고 시간을 만들고 계셨어.
방학중이라도 우리 엄마는 바쁘시거든.
드디어 오늘 과천이란 곳을 왔어. 국립 현대미술관이래.
작년 여름에 제주도 현대미술관에 갔었어. 내 첫돌 기념으로
할머니랑 엄마랑 나 셋이서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했거든.
그때 내 생애 첫 미술관 나들이를 했는데 오늘이 두 번째네.
나도 두 살이 되어 가는 중이라 바빠지는 것 같아.
나는 잘 걸을 수 있어
그래서 유아차에서 내렸어.
걸어 다니며 그림을 볼 거야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넘어서는 안될 선을 자꾸 넘었어,
들어가면 안 되는 곳도 들어가고
만지면 안 되는 작품들도 만지고 싶었어
그래서 결국
내 전용 유아차에 태워지고 말았지.
인디언 텐트다!
할머니는 나더러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보래
"우리 로리 텐트 같다" 하시면서
세모는 산을, 네모는 책을, 동그라미는 풍선을 그릴 때 그리는 거래. 나는 어려워.
아직 아기잖아 헤헤
딸, 딸, 딸기
엄마! 딸기!
부쟈 부쟈~(보자,보자)
딸~ 기~
맛있게 먹었던 딸기가 생각났어.
엄마와 할머니는 웃으시며
"딸기 옆엔 뭐지?" 하고 묻는 거야.
달~
"달 위에는 뭐야?"
내가 요즘 많이 하는 말은 달~이야.
창가에 앉아서 하늘을 보면 하얀 달이 보일 때가 많아.
내가 즐겨보는 그림책 중엔 '달님안녕'이라는 책도 있어.
너무 많이 봐서 다 외웠는데 아직 말을 잘 못해서 들려줄 수가 없어. 어쨌든 난 달님을 좋아해.
그런데 여기도 둥근달이 떴네?
저기 엄마가 있어. 배가 부른 것 같아.
아빠하고 할머니도 있어.
나는 가운데에 아빠하고 할머니가 감싸고 있어.
그런데 우리 가족은 아니었나 봐.
할머니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어떤 악기처럼 생겼다고 하셔.
내가 좀 더 자라면 할머니의 생각도 이해할 수 있겠지?
역시 세모는 산인가 봐.
나도 세모를 잘 그리고 싶어.
그래서 산도 만들고 나무도 만들고 싶어.
내 도화지에 할머니가 그려놓은 나무가 많아.
동그라미 나무와 세모나무.
그림을 잘 그리려면 동그라미, 세모, 네모를 잘 그릴줄 알아야 하나 봐.
사자 아니야?
사자야 너 왜 여기 있어?
나 만나러 왔어?
으르르렁~
너의 갈기는 언제 보아도 멋져!
이곳은 내 놀이터인 줄 았았는데...
만지면 안 되고 가까이 가면 안 되는 것들이 많아.
여기서 뛰다가 나는 유아차에 태워지고 말았지.
전시실 밖으로 나와서 보니 좋은 작품들은 다 여기에 있네.
하늘, 바람, 해님, 비행기 그리고
나, 로리!
미술은 어디에나 있는 게 맞아.
지금 내가 서 있는 곳,
그림 같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