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시선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이야기한 글이 책이 되었다. 작가는 산울림 밴드의 김창완이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부터 그는 산울림이라는 록밴드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참 오래 봐 온 연예인이다. 언제부턴가 라디오를 틀면 다정한 목소리로 사람 사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야말로 방송인보다는 친근한 이웃의 맘씨 좋은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SBS 파워 FM‘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시작하는 말을 모아 엮은 책,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를 읽으니 따뜻하고 담백한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는 이 책에서 소외된 사람들,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보여주며, 작은 행복과 감동을 이야기한다. 어느 청취자의 사연에 답한 글이 이 책의 제목이 된 것 같다.
세상사 자로 잰 듯 똑 떨어지는 것 아니니 여유롭게 생각하라는 말과 함께 동그라미를 그린다. 직접 그린 47개의 동그라미 중에는 제대로 된 동그라미가 두 개밖에 없고 찌그러진 동그라미들이 더 많다. 그래도 두 개가 동그라미이면 나머지도 동그라미인 것, 찌그러져도 둥근 건 둥글다는 것이다. 회사 생활, 우리의 일상도 그저 다 찌그러진 동그라미와 같다는 말로 위로를 한다. 매일매일 집착하지 말고 둥글게 살자고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책에는 따뜻한 격려뿐 아니라 어그러진 일상에 실망할 것도, 매일매일 만들어지는 졸작들도, 그 자체로 예쁘다는 김창완만의 인생관이 담겨 있다.
‘가끔 보면 정물화에도 예쁜 꽃 말고 시들고 벌레 먹은 꽃들이 그려져 있기도 해요. 그런 것 보면 우리가 아름답다 추하다 하는 게 사뭇 상대적인 거지요. 할머니가 웃으면 주름골이 더 깊어 보입니다. 그래도 그 웃음이 진짜지요. 아버지의 작아진 등이 인자해 보일 때가 있지요. 젊음과 힘이 능사가 아닙니다.’
이렇게 ‘시간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에서 자연스러움이 진짜 모습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언제부턴가 화장을 잘하지 않는다. 사람을 볼 때 나이에 걸맞은 표정과 웃음, 주름 등이 자연스레 보이면 그 사람이 아름다워 보인다. 그런 눈을 가진 지가 꽤 되었다. 얼굴에 뭔가를 많이 하는 연예인을 볼 때마다 달라지는 그들의 표정에서는 자연스러움을 찾기 어렵다. 곱게 늙어가는 여배우 W를 보면 연기도 자연스럽고 나이를 먹을수록 곱다는 생각이 드는 데 비해서 말이다. 그런 사람을 볼 때 시간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이 보이는 것 같다.
김창완이 말하는 아름다움은 그뿐만이 아니다. 그의 생각에서 우러나는 삶의 아름다움은 곳곳에 있다. 아니, 마음 안에 꽉 들어차 있는 듯하다.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 어떻게 느끼느냐는 내 마음에 달렸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오늘 아침 밥집에서 뜨끈한 국물을 뜨는데 속이 풀린다는 게 실감 나더군요. 문득 희망의 온도라는 게 뭐 대단히 높아야 하는 게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견딜 만하네, 춥지는 않네 하는 정도면 충분히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희망이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사랑이나 온정도 뭐 대단히 뜨거울 필요는 없는 거지요. 직장 떨어진 아들 아침은 잘 먹었나 궁금하면 그게 사랑이고, 버스 정류장 앞의 붕어빵 아저씨 장사 잘되냐고 한마디 건네는 것도 온정이지요. 식은 숭늉 같은 미지근한 사랑도 사랑은 사랑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실제로 뜨거울 필요 없는 희망의 온도 역시 잘 유지하지 못하고 사는 게 이 세상을 사는 현대인들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 역시 온정을 나누며 살고 있는지 돌아보았다. 옆집, 위, 아랫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 말이다. 세상이 삭막하게 변해가는 것도 불안하지만 그렇게 만드는 것도 우리 자신인 것만은 확실하다. 온정을 나눌만한 이웃이 존재한다는 것은 살맛 나는 세상에서 나름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런 사람인가 하고 돌아보았을 때 자신 있게 그렇다고는 못할 것 같다. 늘 온라인 안에서 소통하며 혼자 해결하는 모든 정보 안에서 만족하고 있지 않은가.
김창완의 에세이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의 엄마 세대가 소통했던 마을 전경이 떠오르곤 한다. 돌아가며 김장하는 날을 정하고 품앗이하며 정겨운 웃음꽃을 피우던 겨울이 있었다. 누구네 할머니 회갑 잔치 준비로 엄마는 음식을 만들러 가고 어린 나는 그 집에서 점심 저녁을 함께하며 다음날 있을 잔칫집 구경하느라 어리둥절했었다. 부엌에서 동네 아주머니들 음식솜씨 자랑과 웃음소리로 동네가 떠들썩하곤 했었다. 이런저런 온정의 소리가 정다운 이웃의 소리가 아닌가.
이 책은 따뜻함으로 온기가 스며드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나고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은 작가 김창완의 세계가 온화하기 때문이다. 그의 목소리는 날카로운 것들을 무디게 녹일 수 있는 다정함이 있다. 그의 글 속에는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철학이 있다.
그는 이 책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가 매일매일 아침이 주는 선물을 받으며 그 감사함으로 엮어낸 책이라고 했다.
생각해 보면 아침마다 소박한 밥상을 받은 것은 독자이며 청취자인 우리가 아니었을까.
이 책을 읽고 나도 오늘 하루 별일 없이 보내고 별일 없이 다음 날 아침을 맞을 수 있는 보통의 날들을 사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황혼육아를 하는 할미로서 손주에게 어떤 정서를 안겨줄 것인가에 대해 하루하루가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별일 없이 잘 지내는 보통의 하루에 감사할 줄 아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거 아닐까?
준비된 어른이 되기보다 늘 새로운 어른이 되기를 작가는 당부한다. 나 역시 그런 생각으로 천진한 아기의 모습에서 커가는 아기의 모습을 보며 변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