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리즈만큼 행복하지 않았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by 혜솔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에세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작가 자신이 인생의 전환점에서 내면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1년 동안 세 나라를 여행하며 자신의 삶을 재발견하는 모습은 전 세계 수많은 여성 독자들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이 책이 출간되던 해에 처음 읽었고 최근에 다시 한번 읽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나의 상황은 책 속의 리즈 길버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도 삶의 주도권을 회복하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리즈 길버트는 성공한 작가다. 남부러울 것 없는 멋있는 집에서 남편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며 힘들어한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깨달음을 얻게 된다.
'나의 삶을 살자 진짜 내 삶을 살자.'
리즈 길버트는 허울뿐인 결혼 생활을 과감하게 정리한다. 길었던 이혼 소송으로 전 재산을 잃고, 연인도 만나지만 결국 상처를 입고 그녀는 떠나야 할 때를 직감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마침내 스스로 답을 찾아야만 하는 자기만의 질문은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디로 떠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결정한다. 생각한 대로 과감하게 망설임 없이.

이탈리아 (eat)로 떠난 길버트는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단순한 즐거움으로 자신의 욕망과 쾌락을 회복하고자 한다.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늘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참아야 했던 식욕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한다.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싶다는 소소한 바람, 피자 한 조각의 칼로리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인생을 살기 위한 실천인 것이다. 각박한 뉴욕에서 생활하는 동안 잃어버렸던 자신의 진짜 욕구를 대면한 길버트는 영성과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 두 번째 여행지인 인도로 떠난다.


인도 (pray)에서는 명상과 기도를 통해 내면의 평화를 찾고 영적인 성장을 경험한다. 인도에서의 생활은 익숙하면서도 낯설기만 하다. 리즈는 시간을 보낼수록 스스로 감지하지 못했던 내면의 균열을 발견한다. 과거의 슬픔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고 각한 그녀의 판단은 다른 형태의 집착임을 깨닫는다. 리즈는 엄하게 자신을 몰아붙이고, 때로는 겁에 질려 도망치기도 지만 텍사스에서 온 리처드와 스승 스와미지를 통해 수련의 참된 의미를 발견한다. 비로소 그녀는 진정한 황홀경을 체험하고, 지난날의 사랑과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나보낸다. 신앙을 회복한다는 건 신에게 찾아가 호소하는 게 아니라 진짜 자신을 마주하고 열렬히 믿는 것임을 깨우친다.


인도네시아 (love) 발리로 온 리즈는 사랑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 수년 전에 취재차 방문했던 발리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주술사 끄뜻 리에르, 그때 그는 리즈에게 곧 전 재산을 잃고 발리로 다시 돌아올 거라고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고 이 발리에서 석 달, 혹은 넉 달간 머무르게 될 거라고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국 끄뜻의 예언대로 빈털터리가 되어 발리로 돌아온 리즈는 마침내 그와 재회한다. 나이 지긋한 끄뜻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며 인생의 지혜를 배우기로 한 그녀는, 그야말로 오랜만에 자신이 회복되었음을, 일종의 균형을 돼 찾았음을 느낀다. 이제 두 번 다시 완전한 평정심,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놓치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요가와 명상에 매진하지만, 끄뜻은 리즈에게 오직 그것만이 정답이 아니라고 일러 준다.

우연찮게 브라질 남성 펠리페가 리즈의 인생으로 들어온다. 리즈는 또다시 사랑과 남자에게 자신의 인생이 휘둘릴까 고뇌하면서도, 펠리페를 향한 감정을 모른 체할 수 없다. 그러다 리즈는, 끄뜻과 민간 치료사 와얀의 조언대로 인생의 새로운 균형을 이루기 위해 때때로 현재의 균형을 과감히 깨야 할 때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동안 사랑 탓에 고통받았으니 사랑을 멀리해야 할까? 상처받는 두려움 때문에, 덫에 걸린 사람처럼 삶의 균형만을 추구해야 할까? 마침내 리즈는 가장 힘들었을 시기에 마음의 안정을 찾았던 발리의 외딴섬으로 펠리페와 함께 나선다.


이 책을 읽고 나는 한동안 많이 부대꼈었다. 나 같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니 지금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로 짧지 않은 시간을 방황했다.

나도 리즈만큼 행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이기적인 것처럼 느껴졌었다. 3년의 별거 끝에 누구의 아내 자리는 벗어버릴 수 있었다. 길고 힘든 날들이었고 나도 내 명의의 부동산을 다 넘겨주고야 그 끝을 매듭지을 수 있었다.


리즈는 눌러왔던 욕망을 먹는 걸로 회복하기 위하여 이탈리아로 떠났지만 나는 황폐해진 마음을 손질하기 위해 충청북도 산골마을로 귀촌을 했다. 해발 700 고지 외딴집이어서 좋았다.

이탈리아에서 리즈가 음식을 통해 단순한 행복을 찾는 과정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나도 땅을 일구고 꽃씨를 심고 내가 먹을 채소를 가꾸는 생활을 했다. 작은 행복이 하루하루 커지는 느낌으로 참 좋은 날들이었고 두 아들도 나를 도와 장작을 패주고 풀을 깎아주며 자연 속에서 주말을 즐길 수 있었다.

산골 생활은 명상과 자연 먹거리를 함께 거두는 생활이기도 했다. 새벽 세시가 지나면 건너편 산자락을 서서히 물들이는 아침노을을 볼 수가 있다. 툇마루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하늘에 햇물이 번지는 것을 내려다보며 기도를 하는 날들이 늘었다. 그것이 행복이라는 느낌, 평화롭다는 느낌은 황폐했던 마음을 추스르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곳에서 5년 정도 살았다. 편안하고 평화롭지만 내게도 균형은 필요했던가보다. 어느 해 문인들과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나는 성당이 너무 먼 곳에서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눈이 쌓이는 겨울엔 신부님께서 성당에 오지 말고 집에서 기도하라고 전화를 주신 날도 있다. 겨울의 고립이 몇 해 동안은 싫지 않고 즐겁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생활의 불편함이 하나 둘 늘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서울로 볼일을 보러 가는 날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리즈는 인도에서 명상과 수련을 하면서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을 떠나보낸 후 인도네시아 발리로 가지만 나는 산골생활을 청산하고 체코 프라하로 떠나기로 했다. 성당이 아주 많은 나라, 그곳에서 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며칠은 일을 하고 며칠은 여행을 하거나 산책을 하며 오롯한 나만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높은 산보다는 평지의 푸른 숲이 많은 도시여서 더 좋았고 그런 자연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산골마을에서처럼 식물들에게 많은 사랑을 쏟았다. 내 마음의 상처가 있었다면 그것은 자연 속에서 치유되었을 것이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리즈 길버트가 세 곳의 나라를 여행하며 자신의 행복과 영적 성장을 이루었다면 나는 어디가 되었든 자연 속에 자연스럽게 나를 내버려 두었던 것이 내면의 평화를 찾고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결국 진정한 사랑은 스스로를 사랑하는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배웠던 책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가 영화로 나온 지도 꽤 되었다. 오래전에 본 그 영화를 오늘 발리에서 다시 한번 보았다. 내가 나를 자연스레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다 보니 내게도 새로운 사랑이 생기기 시작했다, 며느리가 둘, 손주가 셋이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으랴.

올여름휴가를 어쩌다 발리로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들 며느리와 함께 이 영화를 발리에서 다시 보는 밤, 비가 한차례 다녀간다. 맹꽁이 우는 소리도 우렁차다. 한밤중에 새들은 또 왜 지저귀는지... 리즈가 살았던 우붓의 밤이 깊어간다.


'진정한 평화는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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