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프라하에서 지내고 있던 해 가을, 큰 아들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며 찾아왔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였다.
비엔나야 가서 볼 것이 많은 곳 이긴 하지만 아들이 꼭 가보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
비엔나에 도착해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Hundertwasser haus와 museum이다. 그 주변은 동심이 그려진 그림 속으로 들어서는 길 같았다. 둥글게 둥글게 가위로 귀퉁이를 오려낸 듯한 부드러운 곡선의 건물 안, 돌고 돌아서 다른 세상에 다가서는 것 같은 신비로운 계단, 종일 건축 강의를 들으며 이렇게 즐겁기는 처음이다. 그 여행에서 나는 학생이 되고 아들은 교수가 되어 한층 의미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집에 대한 나의 행복론이 그 길 어느 모퉁이에서 맞물리는듯한 파란 오후다.
이사하는 것이 생각할수록 신이 났던 때가 있었다. 엄마는 어린 나에게 이사할 집을 미리 알려주었다. 학교에서 파하고 귀가할 땐 새로운 집으로 잘 찾아올 수 있도록...
처음으로 마당이 있는 집 대문을 열었다. 대문 양 옆으로 커다란 나무가 서 있었다. 그때 그 나무의 이름은 몰랐지만 꽃향기가 유난히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 꽃의 향기를 맡을 때마다 나는 조금씩 여자가 되어가는 듯했다. 보라색 작은 꽃잎이 다닥다닥 모여 한 송이를 이룬 라일락이었다. 처음 라일락 향기를 맡았던 그때의 나는 그 향기처럼 풋풋하고 상큼했었다. 대문 맞은편 귀퉁이엔 더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나뭇잎은 내 얼굴보다도 크고 튼튼했다. 그 나무에 핀 꽃도 연 보라색이었는데 라일락보다 꽃은 크고 향기는 없었다. 바로 오동나무였다. 그 집으로 이사하던 때부터 나는 보라색 꽃을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마당 한쪽에 펌프와 장독대가 있던 시원한 집, 내가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 본 것은 녹색으로 가득한 둥근 마당이 있는 그 집에 살 때였던 것 같다.
처음으로 집은 참 좋은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던 아늑하고 푸근한 집이었다.
훈데르트바서 빌리지 주변이 그렇다. 펌프와 장독대는 없어도 내가 꾸던 꿈들이 날아와 앉은듯한 영롱한 세계의 색채와 싱그러운 식물들로 어우러져 있다. 펌프, 그렇다. 훈데르트바서도 물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백개의 강물을 뜻하는 훈데르트바서라고... 한문으로 百水 라는 도장까지 만들어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HUNDERTWASSER-HAUS, WIEN
건축 전공인 아들이 안내한 훈데르트바서 빌리지는 낡고 오래된 서민 아파트를 개조한 임대주택이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을 주창해 온 미술가이며 건축가이자 생태운동가인 훈데르트바서, 그의 예술 철학을 담은 건물들은 아파트 이외에도 쓰레기 소각장과 대성당, 쿤스트 하우스 등이 있으며 독일의 여러 곳에서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훈데르트바서는 일본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그런 연유로 오사카의 쓰레기 소각장이 눈에 띈다. 아무도 소각장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훈데르트바서의 친환경 작품이다. 몇 해 전에 간사이 지방을 여행한 적이 있다. 그때 훈데르트바서의 그 작품이 쓰레기 소각장인 줄을 모르고 지나갔었다.
나무, 곡선, 녹색 등 훈데르트바서의 박물관에 전시된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그의 예술 세계는 자연과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이다. 나는 화가로서의 훈데르트바서 보다는 건축 치료자인 건축가로, 생태운동가로서의 그가 좋다.
그의 작품에는 당연히 그가 주장하는 철학이 담기게 마련이다. 그가 주장해 온 작품 철학으로 다섯 가지 스킨론이 있다.
첫 번째 피부는 몸, 두 번째 피부는 옷, 우리를 보호해 주는 세 번째 피부는 집, 네 번째 피부는 사회, 그리고 다섯 번째 피부에 해당하는 지구의 환경을 들었다.
제3의 피부가 집이라 주장했던 그는 자신의 감정을 그 안에 나타냈고 눈, 코, 입 등 인간의 모습을 표현해 넣기도 했다.
집을 세우며 빼앗은 식물의 터전을 돌려주어야 하며 사람에 의해 파괴된 자연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신체, 생물, 물질의 유기적 순환을 강조했는데 그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나선형의 곡선들은 그런 순환적인 모티브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훈데르트바서는 일생을 환경보호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자연과 인간의 평화로운 조화를 주장하며 예술 밖에서도 활발한 운동을 실천한 환경 운동가로서 1993년 자연과의 평화조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 내용이 너무 좋아서 기록해 두고자 한다.
자연과의 평화조약
1. 우리는 자연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자연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자연과의 소통)
2. 우리는 열린 하늘 아래 수평한 모든 것(지붕이나 길)은 자연에 속한 것이라는 원리에 따라 인간이 무단으로 점유하고 파괴했던 자연의 영역을 돌려주어야 한다. (자연의 영역 환원)
3. 자연발생적인 식생에 대환 관용 (자연에 대한 관용)
4. 인류의 창조와 자연의 창조는 재결합되어야 한다. 이들의 분리는 자연과 인간에게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자연과의 재결합)
5. 자연의 법칙에 조화되는 삶 (자연과의 조화)
6. 우리는 단순히 자연의 손님일 뿐이며,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인간은 지구를 파괴해 온 가장 위험한 기생 자이다. 인간은 자연이 재생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생태적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 (자연의 재생)
7. 인간사회는 다시 쓰레기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쓰레기를 존중하고 재활용하는 사람만이 죽음을 삶으로 변화시킨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순환을 존중하고 생명이 재생하여 지구에서 계속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