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 한 줌' 그리고 '성장'
이런 얘기를 들었어. 엄마가 깜박 잠이 든 사이 아기는 어떻게 올라갔는지 난간 위에서 놀고 있었대. 난간 밖은 허공이었지. 잠에서 깨어난 엄마는 난간의 아기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이름을 부르려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 아가,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엄마는 숨을 죽이며 아기에게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어. 그러고는 온몸의 힘을 모아 아기를 끌어안았어. 그런데 아기를 향해 내뻗은 두 손에 잡힌 것은 허공 한 줌뿐이었지. 순간 엄마는 숨이 그만 멎어버렸어. 다행히도 아기는 난간 이쪽으로 굴러 떨어졌지. 아기가 울자 죽은 엄마는 꿈에서 깬 듯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어. 아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었어.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아랫목에 뉘었어. 아기를 토닥거리면서 곁에 누운 엄마는 그 후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지. 죽은 엄마는 그제야 마음 놓고 죽을 수 있었던 거야.
이건 그냥 만들어낸 얘기가 아닐지 몰라.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나는 비어 있는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어. 텅 비어 있을 때에도 그것은 꽉 차 있곤 했지. 속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그날밤 참으로 많은 걸 놓아주었어. 허공 한 줌까지도 허공에 돌려주려는 듯 말이야.
-나희덕의 <허공 한 줌> 전문
물론 아기를 붙잡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죽기도 하고, 죽었다 다시 살아나 아기를 병원으로 데리고 달려가는 어머니 모습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지극한 모성을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이 이야기를 통해서 부각시키고 싶었던 주제는 모성 자체가 아니라 '삶'과 '죽음' '있음'과 '없음'의 경계에 관해서였다. 그런 의도는 '허공 한 줌'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나, 이야기에 대한 주관적 해석이 담긴 2연에 어느 정도 나타나 있다.
(… 중략…)
내가 이 이야기를 인상적으로 듣고 시까지 쓰게 된 것은 아기를 놓친 엄마가 순간적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 때문이었다. 그 죽음은 물론 자식에 대한 사랑의 좌절로 인한 것이지만 일종의 움켜쥠(執)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움켜쥔 채 살고 있는 것인지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허공 한 줌 속에도 얼마나 많은 감정과 집념이 들어있는 것인지 삶과 죽음도 결국 그 움켜쥠과 놓아줌에 다른 말이 아닌지… 이런 생각의 계기를 그 이야기는 내게 던져주었다. 그런데 이 시조차도 내 시의 모성성을 확인하기 위한 보충자료로 활용되었을 뿐이다.
바다가 가까워지자 어린 강물은 엄마 손을 더욱 꼭 그러쥔 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거대한 파도의 뱃속으로 뛰어드는 꿈을 꾸다 엄마 손을 아득히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래 잘 가거라 내 아들아. 아제부터는 크고 다른 삶을 살아야 된단다. 엄마강물은 새벽강에 시린 몸을 한 번 뒤채고는 오리처럼 곧 순한 머리를 돌려 반짝이는 은어들의 길을 따라 산골로 조용히 돌아왔습니다.
-이시영의 <성장>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