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솔 Sep 10. 2024

부끄러워요

인사하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야

로리는 주말을 제외하고는 날마다 도서관에 가요.

우리 동네 어린이 도서관은 아담하고 깨끗하고 예뻐요.

유아 열람실은 로리에게 좋은 놀이터였어요.

로리가 좋아하는 책들이 전부 있었거든요.


로리가 매일 도서관에 가니까 사서 선생님들은 로리를 다 알아보셨어요.

하긴, 기어 다닐 때부터 날마다 갔으니까요. 

그리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꼭 인사를 하고 들어가서 모두들 예뻐하셨어요.

아냐세요?

안년나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들은 로리가 오는 소리가 들리면 하시던 일도 멈추고는 꼭 인사를 받으러 나오셨어요.

"로리 안녕?" 하며 먼저 인사를 하시기도 했죠.

책을 다 보고 나올 때도 안녕 계세요. 안녕 계세요~ 하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꼭 인사를 하고 나온답니다.


그런데 두 돌이 지나고 어느 날부터 로리가 이상해졌어요.

도서관에 들어서면 사서 선생님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눈을 아래를 내리고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얼버무리고 그냥 열람실로 들어가 버리는 거예요.

"로리 안녕? 어? 오늘은 인사 안 해주는 거야?"

책을 다 보고 집에 돌아갈 때에도 쌩~하고 뛰어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조용한 곳에서 물어봤어요.

"왜 선생님들께 인사 안 하는 거야? 그동안 씩씩하게 잘했잖아. 이제 인사하는 거 싫어졌어?"

"인사하는 거 좋은 거야 할머니~ "

"그런데 왜 안 해? 도서관 선생님들이 로리 기분이 안 좋은가? 하고 걱정하시는데?"

".... "

몸을 비비 꼬면서 멋쩍게 웃고 있어요. 그러면서 수줍게 말하네요.

"부끄러워요. 부끄러워요 할머니..." 하면서 눈웃음을 칩니다.


아, 부끄럽대요. 벌써 부끄럽다네요. 쑥스러운 게 맞는 건지 부끄러운 게 맞는 건지...

어느 날 갑자기 슬금슬금 부끄러움이 다가왔나 봐요.

"로리! 부끄러운 게 뭔지 알아? 인사를 잘하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야, 인사를 안 하는 게 부끄러운 거지."

"부끄러운 거 안 좋아요? 부끄러운 거... 어... 안 좋은 거야 할머니?"

"부끄러워도 인사를 잘하는 건 좋은 거야~ "


인사 잘하는 로리,

아무도 없는 유아 열람실을 어린이집 오듯 날마다 차지하고 있는 로리,

책 읽어주고 물어보면 또박또박 대답하는 로리,

그래서 직원들은 말 잘하고 인사 잘하는 로리에게 모두 관심을 줄 수밖에 없었지요.

어느 날부터 모두들 자기에게 관심 갖고 말 붙이며 귀여워, 귀여워~ 하는 게 부담스러웠나 봅니다.


로리가 잘 자라고 있는 것은 맞겠죠? 너무 빨리 자라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아요.

좀 더 아기의 모습으로 오래 있으면 좋겠다는 억지스러운 생각을 해 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무가 점프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