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수면 시간이 얽혀서 온 식구가 고생했었다.
출근해야 하는 애 엄마, 애 아빠까지 잠을 설치고 피로가 누적되는 날이 많았다.
로리의 낮잠시간이 애매해서였다. 거기다 낮잠은 생각보다 길게 잤으니 그것도 원인이었던 것 같다.
또 하나는, 잠들기 전까지 책을 읽어달라는 대로 다 읽어 주다 보니 그것도 잘못되었던 것 같다.
아빠한테 추피책 읽어달라고 다섯 권, 엄마한테 동물친구들 읽어달라고 다섯 권
그리고 할머니한테 무조건 많이 읽어달라고 많이 내어놓는다. 잠을 안 자겠다는 얘기다.
그래서 엄마가 규칙을 정했다.
잠자기 전엔 3권만 읽기로, 3권 다 읽고 나면 잠을 자야 하는 걸로 약속을 했다.
그랬더니
"오늘은 아빠랑 잘래요. 아빠 일루 와요~" 아빠가 뽑혔다.
아빠는 로리가 골라놓은 생활동화 3권을 읽어준다. 마지막 읽기가 끝났다.
로리는 벌떡 일어나서 엄마를 찾는다.
"엄마랑 잘래요. 엄마~ 엄마 만나러 갈래요 잉~잉~" 하면서 엄마 방으로 뛰어간다.
"엄마랑 자고 싶어요." 책 읽어주는 대상이 엄마로 바뀐다. 책 3권을 읽어달라고 한다.
물론 더 읽어주면 좋지만 약속을 했으니까 3권만 읽어달라는 거다.
어이없어하던 엄마도 일단 재워야 하니까 느릿느릿 한 두권 읽어준다.
로리는 잠 잘 생각이 없다. 엄마가 3번째 읽기를 마치자마자 벌떡 일어나면서 통곡을 한다.
"할머니~ 할머니~ 로리는 할머니랑 자고 싶어요 아앙~" 하며 내 방으로 뛰어 들어오는데
"로리! 이리 와! 할머니 주무셔야 돼~ 로리도 얼른 자, 약속했잖아!"하고 엄마가 단호하게
야단을 치며 따라온다. 잠시 움찔하던 로리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울음을 그치고는
"할머니가 걱정돼서 로리가 왔쪄요, 할머니 팔, 아야 아야 해서 문질문질(마사지) 해주려고.."
(우아! 조것이 사람이야, 여우야?) 이런 말을 듣고 어떻게 화를 낼 수 있단 말인가.
애를 재워주고 다들 자야 하는데 식구가 모여서 웃느라고 또 시간을 놓치고 만다.
기막힌 일이다. 할머니랑 자겠다고 오면 나도 책 3권 다 읽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다 읽어주면 다시 아빠랑 자겠다고 나갈 거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억지로 재우려고 하는 것도 힘들지만 그러는 어른들의 머리 꼭대기에서
여우짓을 하는 26개월 아가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그게 더 힘든 일인 것 같다.
요즘은 낮잠을 재우지 않으려고 나름 애를 쓰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차츰 제자리로 돌아오는지
10시 안에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책도 3권 읽어준 뒤 더 보고 싶으면 혼자서 보다가 자라고 했다.
그렇게 하고는 있지만 대신 로리는 제 옆에 할머니가 누워 있어야 한단다.